[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79) 무사 백동수의 ‘무예도보통지 기사의 사진

조선 후기 무사 백동수(1743∼1816)는 파란만장한 삶을 산 주인공입니다. 경종 때 연잉군(훗날 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신임사화에 연루돼 죽은 평안도 병마절도사 백시구의 증손으로 태어났으나 조부인 백상화가 서자였기에 신분상 서얼에 속하였답니다. 그래서 1771년 과거시험 무과에 급제했지만 관직 진출에 제한을 받기도 했지요.

낙담한 그는 1773년 기린협(강원도 인제)으로 들어가 직접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는 등 낙백(落魄) 시절을 거쳐 정조 즉위(1776년)와 함께 부사용(副司勇·정9품 무관)에 제수됐습니다. 이후 집춘영(集春營·창덕궁 동쪽의 어영청 분영) 초관(哨官)에 이어 어영청(御營廳·임금을 호위하는 군영) 초관, 장용영(壯勇營·국왕 호위군) 초관을 맡는 등 승승장구했답니다.

장용영 장교로 정조의 신임을 받은 그는 1790년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서문에서는 정조가 이 책을 간행하게 된 동기를 간략히 밝히고 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창이나 검의 병기(兵技)는 없이 궁술(弓術)만 있었기 때문에 군사들의 무예 훈련을 위한 교범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임진왜란 후 선조 때 곤봉과 창 등 여섯 가지 기예를 다룬 ‘무예제보’가 편찬되고, 영조 때에는 죽창과 칼 등 12기를 더해 ‘무예신보’가 간행됐지요. ‘무예도보통지’는 이 두 가지 교본에 마상(馬上)과 격구(擊球) 등 6기를 더해 도합 24기로 집대성했답니다. 다른 군사서적이 전략과 전술 등 이론 위주라면 이 책은 전투동작 하나하나를 그림과 글로 해설한 실전훈련서랍니다.

교범에는 24종의 병기를 활용한 근접 전투에 대한 기술을 다루되 활이나 총포의 기술은 담지 않았습니다. 말미에는 의복에 대한 해설과 그림, 그리고 각 부대별 차이점을 기술했지요. 개별 동작의 해설부분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그림을 보면서 전투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언해본(한글 번역본)도 발간했으니 교범의 대중화를 위한 배려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중국식과 조선식을 뚜렷이 하고, 그림도 도식(圖式) 설(說) 보(譜) 도(圖) 총보(總譜) 총도(總圖) 등으로 나누어 일일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답니다. 최근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동양무술사의 서술에 ‘무예도보통지’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니 전투기술사 또는 병기사(兵技史)로서의 가치가 뛰어난 문화유산이라 하겠습니다. 목판본 4권 4책으로 이뤄진 ‘무예도보통지’ 원본은 서울대 규장각도서에 소장돼 있으며 한국체육사연구회에서 언해본을 합쳐 영인(影印)했답니다.

SBS 월화드라마 ‘무사 백동수’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시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하지만, 조선 최고의 종합무예지 ‘무예도보통지’의 진가를 널리 알리는 역할도 기대됩니다.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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