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무슬림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이란 난민 무바자프 씨 기사의 사진

개종 알려지면서 괴롭힘 당하던 아내·딸 영국 도피

무슬림이었던 이란인 케샤바르즈 무바자프(39)씨는 2006년 국내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지난 14일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았다. 재판부는 “기독교도가 된 무바자프씨가 이란으로 돌아가면 사형을 당하는 등 박해의 우려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엄격한 이슬람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나 30여년을 무슬림으로 살았던 그는 왜 기독교를 선택했을까. 31일 무바자프씨를 경기도 광주의 한 공장에서 만났다. 그는 이 공장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았지만 우리말은 여전히 서툴렀다.

무바자프씨는 이란에 계신 아버지(71) 얘기부터 꺼냈다. 그의 아버지는 이란 북서부 레즈반 샤르시에서 이슬람 성직자의 무덤을 관리하는 7인 위원 중 한 명이다. 시아파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슬림으로서 높은 종교적 생활을 요구했다.

“5년 전 기독교로 바꾼 뒤 아버지에게서 국제전화가 왔어요. ‘아버지, 저 이제 무슬림이 아닙니다. 메시히(이란어인 페르시아어로 기독교인)가 됐습니다.” 그런데 무바자프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무바자프씨는 오른손을 자신의 목에 들이대며 가로로 베는 동작을 취했다. 그는 아버지가 전화에서 ‘알라를 버린 너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사형’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란에선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어요. 무엇이 맞는지 제 스스로 가려낼 수가 없었어요. 교회 사람들이 저를 따뜻하게 대해줘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몇 년 동안 신앙에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고민이었죠. 그러던 중 어느 날 꿈을 꿨어요.”

2005년 공장에서 용접하는 일을 마친 무바자프씨는 방에 올라와 잠이 들었다. 순간 가위에 눌렸다. 이란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가위에 눌린 건 처음이었다. 고개를 들 수도,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었다. 무바자프씨는 지금도 그때 왜 그런 몸 상태가 됐는지 신기하다고 했다.

그는 “이란에서 항상 쿠란을 쥐어주며 암송하라고 시키던 아버지 말이 떠올랐어요. 어릴 적 아버지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무서움에 떨지 말고 이슬람 성직자들의 이름을 외치라고 가르치셨습니다”고 했다. 그는 가위 눌림에서 벗어나고자 ‘무함마드, 알라의 선지자여! 도와주소서. 들리시나요. 나를 풀어주세요’라고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더 부를 이름이 없었습니다. 제가 2004년부터 외국인 노동자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가끔 나갔어요. 그래서 다음으로 예수를 불렀죠. 그런데 순간 머리 위에서 천천히 손이 내려오더니 제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깼습니다. 일어나서 침대 옆 거울을 봤더니 입에 거품이 묻어 있고, 입술은 앞니에 물렸는지 뜯겨져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나근나근하게 말하던 무바자프씨는 이 꿈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 톤이 한 단계 올라갔다. 그는 이 꿈이 개종하게 된 결정적 계기라고 했다. 무바자프씨는 다음 해인 2006년 경기도 평택에서 주한 미군 출신 미국인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 꿈을 꾸기 전까지 그는 무슬림으로 살았다. 아버지로부터 이슬람 시아파 성지인 ‘콤(Qom)’에 가서 신학교에 입학해 성직자가 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이란에서 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이슬람 시아파 기념일인 ‘모하람’ 때 아버지를 비롯한 사람들이 채찍과 쇠사슬로 누군가의 등과 머리를 때리는 모습을 봤어요. 순교자인 이맘 후세인의 희생을 기리는 의식이었죠. 아버지는 저에게 너도 저렇게 맞으면 신이 기뻐하실 거라고 했지만 저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를 보며 끔찍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로는 모스크(이슬람사원)에 잘 안 가게 됐어요.”

1993년 군복무를 마치고 결혼한 그는 이란에서 작은 사업을 하다 한국에서 의류·신발 무역업을 하기 위해 2000년 11월 입국했다. 동대문에서 사람을 소개받았고, 의정부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04년 송탄에 있는 외국인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근처 미군 부대 군인, 저 같은 외국인 노동자까지 다양한 나라의 사람이 있었어요. 사람과 어울려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많이 힘든 시기였는데 교회에 가면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무바자프씨는 2년 뒤 어렵게 개종을 선택했다. 개종할 경우 이란 북서부 지역에서 종교적 명망을 받으며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도 잃게 된다. 하지만 그는 가위에 눌린 자신을 구해준 ‘손’의 존재를 확신했고, 이를 속일 수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저한테 먼저 국제전화를 걸어오신 적이 있어요. 이슬람 성직자 무덤에 가서 네 이름으로 헌금을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한국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서 돌아간 이란 친구들에게 이미 듣고 알고 계셨던 거 같아요. 확인하시려고 전화하신 거죠. 하지만 저는 솔직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의 아내는 11세 딸과 함께 현재 영국에 도피해 있다. 남편이 개종한 사실이 동네에 알려지자 사람들이 아내와 아이를 괴롭혔다고 한다. 아내는 자신의 친오빠가 계단에서 밀어 넘어뜨려 손가락 두 개가 부러지기도 했다.

“제겐 꿈이 하나 있습니다. 제 가족과 아버지를 한국으로 초청하고 싶어요. 칠십이 넘은 아버지를 꼭 한번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무바자프씨의 침대 머리에는 페르시아어로 쓰인 성경책이 놓여 있었다. 그는 “기도가 가장 큰 힘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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