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등나무 그늘 아래 기사의 사진

옛 선비들은 자연에서 지혜를 찾는 일을 즐겼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를 그린 선비화가 강희안은 뜰에서 본받을 만한 품성을 책에 적었다. 소나무에서 장부 같은 지조를, 국화에서 은일(隱逸)의 모습을, 매화에서 품격을, 석창포에서 고한(孤寒)의 절개를, 괴석(怪石)에서 덕을 찾았다.

선비들이 한사코 싫어한 나무도 있었다. 등나무다. “소인들은 등나무 덩굴과 같아서 다른 물건에 의지해야만 일어설 수 있다”는 식으로 바라봤다. 뼈대가 없고, 어미의 목을 감아 죽이는 나무로 천대 받았다. 등나무는 ‘갈등(葛藤)’의 또 다른 당사자인 칡과 달리 왼쪽으로 돈다고 해서 왕따를 당했다.

덕수궁 석조전 앞의 등나무는 어떤가. 연보랏빛 꽃송이 떨어지고 없지만 무성한 잎의 그늘은 한여름의 휴식처로 으뜸이다. 더불어 등나무 줄기로 지팡이를 만들면 단단하고, 덩굴로 바구니를 엮으면 질기니 그냥 미워할 일이 아니다.

손수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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