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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이동훈] 우토야와 청춘콘서트

[데스크시각-이동훈] 우토야와 청춘콘서트 기사의 사진

1인당 국민소득이 8만4000달러로 세계 2위인 노르웨이는 10여년 전부터 한국정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김대중 정부 당시 진념 경제부총리는 틈만 나면 부상하는 중국과 세계 3위의 경제 강국인 일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한국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강소국 노르웨이를 배워야 한다고 설파했다. 노무현 정부 땐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노동 정책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실제로 국내에 주입하려 한 적도 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한국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노르웨이가 극우주의파 청년의 잔인한 폭탄테러와 총격으로 연쇄테러를 당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슬픔과 증오를 관용과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노르웨이인들이 15만 송이 장미를 들고 수도 오슬로 시가를 행진하며 ‘톨레랑스’를 외치는 모습은 강소국 노르웨이가 단지 부유한 경제뿐 아니라 건전한 정치문화 속에 이뤄져 왔음을 일깨운다.

청소년 55명 등 69명이 목숨을 잃은 우토야섬은 정치판이 당리·당략만을 일삼는 기성 정치인들의 싸움판이 아니었다. 6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사건 전날부터 열렸던 청소년 정치캠프는 집권 노동당 산하 노동당 청년회(AUF)가 매년 열고 있는 여름캠프의 일종이다. 1950년부터 시작했으니 60년이 넘게 흘렀다. 외신을 통해 날아든 테러 직전 정치캠프 현장은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였음을 말해준다. 이곳에선 청소년들과 기성 정치인들 사이에 간극이 있을 리 없다.

살인참극에서 생존한 한 16세 소년은 페이스북을 통해 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악을 악으로 이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선이 악을 이길 것”이라고 썼다. 소년의 생각은 이곳에서 정치캠프에 수십년간 참가했던 선배 정치인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와 다르지 않다. 총리는 테러 책임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내 탓”이라면서 “다문화주의와 이민수용정책을 고수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의 포용의 리더십은 바로 힘을 발휘했다. 지난달 30일 한 여론조사에서 집권 노동당의 지지율은 11% 포인트 상승한 41.7%를 기록했다. 스톨텐베르그 총리 지지율은 90%를 넘는 기염을 토했다. 10대 자녀를 둔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정당 주최 캠프에 청소년들이 참가하는 데 대해 머리를 갸우뚱했을 법하다. ‘스펙’ 쌓기에 정신이 없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정치캠프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MBC가 지난 주말 방영한 한 특집프로그램은 우토야섬 캠프에 견줄 만한 ‘청소년 콘서트’ 현장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시청률이 10.9%로 같은 시간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모두 제쳤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 대학원장과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지난 5월부터 의기투합해 전국의 대학과 고등학교를 돌며 강연을 펼치고 있다. 안 교수는 청소년들의 멘토 1위로 꼽히고, 박씨는 트위터 팔로어가 30만을 육박할 정도로 젊은이들의 로망이다. 두 사람은 리더십과 기업가정신 등을 주제로 한 강의로 입시경쟁과 취업난에 지친 청소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이런 두 사람을 놓고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 때 아닌 ‘입도선매’ 경쟁이 벌어진 것은 몰염치에 가깝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최근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안 교수를 영입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이에 질세라 자신의 저서에 간접적인 러브콜을 보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반값 등록금 추진에 이어 젊은표를 끌어들이는 데 제격이라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여의도연구소장인 한나라당 정두언 전 최고위원은 이들을 영입하는 것은 흙탕물에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백번 옳다. 설혹 이들이 정치판에 뛰어든다면 이들을 따르는 젊은이들이 등을 돌릴 것이다. 두 사람을 끌어들이기에 앞서 화합과 관용의 정치로 진흙탕을 먼저 정화하는 것이 순서다.

이동훈 국제부장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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