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장현승] 신비스런 힘 기사의 사진

그 옛날 내가 어렸을 때는 편의점이 없었다. 과자가게에 가면 주인 아주머니가 눈깔사탕 하나를 덤으로 넣어주었고 심부름으로 무 하나 사러 가면 본 적도 없는 아저씨가 무를 건네주며 ‘꼬마야, 무 많이 먹고 얼른 커라’ 하며 격려해 주었다. 이제 마을에는 더 이상 사람들의 그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사진작가 후지와라 신야).

그곳에는 쇼핑몰과 편의점, 패스트 푸드점과 자동판매기가 자리를 잡고 있다. 물건을 사고 팔 때도 훈련된 행동과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기계적 소음을 듣게 될 뿐,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던 그 시절의 정서를 느끼기가 어렵다. 더 나아가 그곳에서 더는 인간관계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요즈음 컴퓨터, 모바일 기기 등 IT의 편리함을 떠난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 느끼게 되는 불편함의 본질에 대해 세계적인 스승들은 우리가 자주 경험하게 되는 지적 불편함이 노화 때문이 아니라 IT가 주는 편리함의 부작용 때문이라 가르쳐준다.

편리에 중독된 삶이 소외 불러

그렇다. 정보체계와 관련된 기술력은 하루가 다르게 끝없이 확장되고 있으며 우리는 이미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있다. 그 대가로 우리는 우리의 능력들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것들 즉, 이성, 인식, 기억, 감정 등 이런 것들을 소외하고 있다. 도구들이 열어주는 가능성 때문에 동시에 도구들이 가져오는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측면의 소중한 가치를 폄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키보드와 키패드를 사용하고 학교에서는 필기 강의를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 문화에서 이미 수기능력이 사라져 간다. 자판을 두드리고 스크린 상에 마법처럼 글자가 새겨지는 것을 보는 데 흥미를 느낄수록 자기의 생각을 자필로 옮기는 능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마치 농부가 기계식 써레와 쟁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토양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되며, 동력 직기가 개발되어 방직공들이 수작업을 하는 것보다 많은 옷을 만들 수는 있지만 섬유에 대한 감각과 그동안 숙련된 손재주의 일부를 잃어가고 있음을 아쉬워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이제 우리는 깊은 생각에 잠겨 지식의 본질을 끌어내는 노력 대신 오히려 정보를 찾기 위한 경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본인의 체험보다는 타인의 것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으며, 스스로 만들기보다는 만들어진 것들을 골라 사용하는 것의 편리함에 감동받고 있다. 도무지 불편한 것으로부터 취득해야 하는 어느 것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도구가 주는 삶의 변화의 끝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자못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존 컬킨은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그 후에 도구는 우리를 만든다’라고 경고하고 있는데, 그 말의 본질적 의미는 도구가 가져다주는 한계의 위험을 지적한 것이다. 시계를 만든 후 우리는 시계에 끌려다니고 있고, 컴퓨터를 만든 후 컴퓨터가 우리를 부리고 있다. 편리함에 중독되면 자기도 모르게 인간적인 것들을 잃어버리고 만다.

격려하는 사람의 소리 필요

기계화되어 가는 이때 우리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다. 거창한 일은 아니다. 과자가게 주인 아주머니와 같이 눈깔사탕 하나 덤으로 아이의 입에 얼른 넣어주는 일이며, 야채가게 아저씨처럼 아이에게 무를 건네주며 ‘꼬마야, 무 먹고 얼른 커라’ 하는 격려의 소리를 내는 일이다. 요즘 듣기 어려운, ‘사람이 내는 사랑과 격려의 소리’가 만들어 내는 신비스러운 힘은 어쩌면 낮과 밤을 살아가는 인생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손길’일 것이다.

장현승 과천소망교회 담임목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