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타산지석 이스라엘 기사의 사진

1948년 정부수립. 건국과 함께 전쟁을 치르고 지금까지 60년 이상 지속돼온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돌파. 국민의 교육열이 높고, 두뇌가 우수하며, 민족성과 애국심이 강함. 30개 가문이 국가 전체 경제력의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빈부격차가 심함. 최근 물가와 집세 폭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 영락없는 우리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니고 닮은꼴인 이스라엘 상황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중동 최고의 국가로 꼽히는 이스라엘이 최근 3주째 반정부시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6일에는 텔아비브에서만 27만명 등 전국에서 30만명 이상이 거리로 나와 집값과 집세 상승, 물가고, 빈부격차에 항의하면서 네타냐후 총리의 하야를 요구했다. 이스라엘에서 비종교적인 이유로 벌어진 시위로는 최대 규모라고 한다. 또 시위에는 어머니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가 하면 그동안 침묵하던 중산층이 대거 참여했다는 보도다. 시위대는 월급의 40∼50%가 집세로 나가고 연봉으로는 한 달을 살기도 빠듯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소수 가문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비판하며 빈부격차 해소와 주택 교육 등 복지 확대를 요구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등 서방 언론들은 “국가 존립이라는 대의명분 앞에 안보 문제 외에는 묵묵히 참아온 이스라엘 국민들이 드디어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또 현지 언론들은 “소수 부유층의 독과점과 카르텔에 당하기만 했던 소비자들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우리에게 그대로 대입하는 덴 무리가 있다. 그러나 안고 있는 문제들 중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타산지석은 되지 않을까 싶다.

닮은꼴인 두 나라

역대 보수 정권들이 안보를 강조하고 때론 집권과 정권 유지에 이용하기도 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 국민들이 이스라엘 국민들처럼 그러한 “대의명분에 묵묵히 참아온 것”만은 아니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문제는 빈부격차 심화, 서민들의 생활고와 복지 확대 요구, 재벌기업들에 의한 경제력 집중에 따른 양극화 등 이스라엘의 홍역이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하지만 청년실업자와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나고 중산층이 무너져 내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조차 힘들만큼 물가와 집세는 오르고 있다. 30대 재벌 기업들의 매출액이 GDP의 80%를 넘을 정도로 경제력이 그들에게 편중돼 있다. 그래도 재벌들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며 빵집 체인에 자판기에 광고대행 등 중소기업 분야를 잠식하고 있다.

시장경제 지키려면

물론 대기업들이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한국 경제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공로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거둔 성장의 혜택이 더 멀리,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자본이나 기술력 등으로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분야만 맡고, 빵집이니 문구점이니 슈퍼마켓 등 중소기업이나 개인이 할 수 있는 분야는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자본가들과 시장지배자들이 지켜야 한다. 그걸 지키는 길은 소비자들에게 소비할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몸집을 더 키우겠다고 폭식을 멈추지 않을 경우 중소기업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소비자들은 소비할 능력을 잃게 된다. 약육강식이 생존의 법칙인 정글에서도 먹이사슬이 유지돼야만 생태계가 보존된다.

무한 경쟁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고 선이라는 신자유주의는 이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살리기 위해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가 이스라엘이 가고 있는 길을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그 길을 가서도 안 되겠지만, 그 길을 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정부와 재벌 그룹들은 이스라엘 상황을 남의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경제 민주주의가 안 되면 정치 민주주의도, 사회 민주주의도 안 되고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평범한 외침이 평범하게만 들리지 않는다.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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