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영미] 아, 옛날이여! 기사의 사진

20세기 미국을 말할 때는 이 사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51년 사진잡지 ‘라이프’는 오하이오주에 거주하는 블루칼라 4인 가족과 그들이 1년간 먹어치우는 식료품 2.5t을 사진으로 실었다. 250㎏의 밀가루와 32.5㎏의 버터, 136㎏의 쇠고기, 313㎏의 감자, 66ℓ의 우유, 32ℓ의 아이스크림, 1572개의 달걀, 180덩어리의 빵. 산처럼 쌓인 음식더미는 미국의 풍요에 대해, 다가올 미국의 시대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줬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산책’을 보면 1950년대 미국의 부가 잡힐 듯 그려진다. 그 무렵 미국 전체 가구의 90%는 냉장고를 보유했다. 3분의 2는 텔레비전을, 4분의 3은 세탁기와 진공청소기를 썼다(1959년 남한의 텔레비전 보유 가정은 1000가구 안팎이었다). 1954년 미국에서는 750만대의 차가 판매됐는데 그중 99.93%가 미국인의 자본과 노동으로 미국 본토에서 생산됐다. 그때 미국은 그랬다. 마당은 널찍하고 잔디는 반짝이고 아이들은 바글댔다.

무엇보다 미국의 부는 인류가 일찍이 목격한 적이 없는 종류의 대중적 풍요였다. 그래서 미국인의 꿈은 세계에 퍼졌다. 미국처럼 하면, 미국을 따라하면 미국만큼 잘살 거라는 믿음은 아메리칸 드림을 글로벌 드림으로 만들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그 꿈을 좇은 이들은 한국인이었다.

오늘 미국에 위기는 시차 없이 밀려드는 형국이다. 정부 부채는 천문학적 액수로 불어났고, 국가 신용등급은 강등돼 언제 회복될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위기의 뿌리가 깊다는 게 불길하다. 한때 세계를 경영하던 영국의 제조업이 추락했듯 자동차 ‘빅3’로 대변되는 제조업 강국 미국의 지위는 오래 전 신흥국에 밀려났다. 자존심이었던 교육 및 사회 시스템에도 경보음이 울린 지 한참 지났다. 특히 사회기반시설의 노후는 퇴락의 불길한 전조였다.

1950년부터 40년 동안 6만㎞ 이상 전투적으로 건설되던 자동차 왕국 미국의 도로는 재정 적자로 현상유지도 어려운 형편이다(담비사 모요의 ‘미국이 파산하는 날’).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제방이 무너지고 2007년 미네소타주에서 다리가 주저앉았을 때 그런 사고는 후진국에서나 나는 줄 알았던 미국인들은 망연자실했다. 이공계 박사의 절반 이상을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거나, 남자 고교생의 30%가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한다는 사실은 미국에 닥친 위기의 뿌리를 보여준다.

흔들리는 미국을 바라보며 우리는 당장 주식을 팔고, 외환을 관리하고, 수출을 걱정한다. 물론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들이다. 그러나 진짜 난제는 아직 숨어 있다.

해방 이후 60년간 해외 박사학위 취득자 2만여명 중 미국 박사는 1만명이 넘는다. 교육, 경제, 경영학 등 일부 학과의 미국 박사 비율은 70% 안팎을 오르내린다. 한 과의 교수 전부가 미국 박사인 경우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미국에서, 미국을 정답으로 배운 엘리트들에 의해 구축되고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이런 시스템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인가?미국 대학이 아니라면 한국의 엘리트는 어디서 충원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한국인은 저마다 각자의 ‘미국’을 갖고 있다. 중고생 자녀가 미국에 조기유학 중인 기러기 가족이 있는가 하면, 대학생 자녀를 영어연수 보내고 등골 휘는 부부도 있다. 2∼3년 해외 근무 하며 ‘미국 물’ 먹은 공무원과 대기업 가족도 있다. 중산층 삶의 꽤 많은 부분은 미국적인 것에 기대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도 조정기를 거칠 것이다.

그 모든 게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듯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건 몇 년 성장률이 지체되는 경기침체 같은 게 아닐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패권, 크게는 서구 우위가 바뀌는 역사적 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른 질문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의 방식이 아니라면, 미국이 틀렸다면 우리는 어디서 답을 찾을 것인가?

이영미 문화생활부 차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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