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비 그치고… 기사의 사진

한 번도 그냥 지나가는 여름이 없다. 친구의 어깨처럼 고맙던 비가, 연인의 숨결마냥 감미롭던 바람이 순식간에 폭력으로 변했다. 고궁도 비바람이 남긴 상처가 크다. 식재가 많은 창경궁 나무들이 많이 쓰러졌고, 춘당지의 물은 범람했다. 폭우 때문에 고궁이 문을 닫은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제 하늘이 잠깐씩 말간 모습을 드러낸다. 햇살 아래 선 나무가 의연하다. 류시화 시인이 ‘비 그치고’라는 시를 썼다. “나는 당신 앞에 선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내 전 생애를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 푸르름이 아주 깊어졌을 때 쯤이면/ 이 세상 모든 새들을 불러 함께/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시인 신현림은 산문으로 거든다. “나무는 저마다 다른 나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건 고독의 거리다. 저마다의 고독으로 숲은 평화롭고 안정감을 찾는다.” 나무는 황혼이 어둠에 물들듯 숲에 스며든다. 천 개의 바람이 풍우의 기억을 일깨운다.

손수호 논설위원 shsh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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