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엄상익] 야구 방망이와 솜 방망이 기사의 사진

“서민과 부자에게 적용되는 법의 잣대가 다르다면 법이 존재할 이유 없다”

조정래씨는 소설 ‘허수아비의 꿈’에서 조폭은 야구방망이로, 재벌은 인사권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는 말을 했다. 우리 사회에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건달들은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인사권은 남용이라도 법으로 이기기 힘들다. 사용자의 재량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벌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를 때 법은 어떨까? 야구방망이를 들고 부하 3명과 함께 아래층에 사는 이웃에게 내려가 목을 조르고 폭행을 했던 재벌2세 경영인이 있다. 그는 1인시위를 하던 회사의 탱크로리 기사를 회장 접견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까고 맷값으로 2000만원을 줬다. 그 사실이 사회적 분노를 일으켰었다.

그 사건에 대해 법은 재벌2세 경영인을 용서해 주었다. 판결이유가 궁금했다. 대한변협에서는 판결문 공개를 강력히 주장해 왔다. 그건 전관예우 문제보다 더 실질적인 문제였다. 판결이유를 국민 모두가 보고 비판할 수 있다면 더 이상 특정 부류만 그럴 듯한 명분의 그늘 아래 혜택을 보는 일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판결문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재벌2세의 ‘맷값 폭행’사건에 대한 판결이유를 봤다.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범행의 구체적 동기와 수단, 범행 후의 구체적인 정황을 참작해서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고 했다.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취재를 한 시사프로의 영상들이 떠올랐다. 재벌2세 경영인은 이미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나이였다. 미성년자나 노인이 아니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환경에서 그는 불시에 회사 공장을 방문해 간부들까지 폭행해 온 것으로 방송은 고발하고 있었다. 그의 성행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나이 먹은 전직 임원은 처절하게 절규했다. 1인시위자를 마음대로 때려도 될 납득할 만한 동기도 없었고 범죄의 수단인 야구방망이도 참작할 사항이 아니었다. 판결문은 또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참회를 했을까? 법조계에 삼십년 이상 있으면서 반성이란 판결문상의 단어는 봐줄 때만 형식적인 근거로 내세우는 용어였다. 진짜 반성하는 인간이라면 스스로 책임까지 진다. 판결이유는 피해자들이 선처를 바라는 의사표시를 참작했다고 한다. 시사프로의 인터뷰장면을 통해 본 피해자의 얼굴에서는 영혼마저 찢겨진 듯 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 선처를 바라는 의사표시는 진정한 것이었을까?

판결이유는 또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이전에 2회의 벌금형 처벌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을 참작했다고 쓰고 있다. 왜 두 번이나 처벌받은 걸 전과에서 제외했을까? 논리를 비약한다면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걸 제외하면 전과는 없게 된다. 봐주기 위해 억지논리를 가져다 붙인 판결이유였다.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욕을 먹을 수 있는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죽은 판결이유였다.

변호사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수많은 사건을 지켜봤다. 서민들은 우연히 시비가 걸려 서로 멱살만 잡고 흔들어도 상호폭행으로 처벌을 받는다. 실컷 얻어맞고도 폭행범으로 뒤집어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돈이 있는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한 기업체 사장은 대법원판결 하나를 만드는데 이십억이니까 되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증인들을 매수하면 사실이 바뀐다. 변호사들을 통해 판검사의 협조를 구하면 뒤바뀐 사실을 목숨 걸고 뒤집을 정의의 사자는 흔하지 않다. 돈 많은 사장이 급하니까 직원을 대신 감옥에 가게 하는 경우도 봤다. 범인 바꿔치기는 종종 있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개인 간의 복수를 막기 위해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해 준다는 게 법의 존재이유다. 그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사법공무원들이 정의로워야 한다. 그저 산적한 일상 업무의 하나로 보면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 뇌물을 받으면 국가가 썩는다. 법의 잣대가 공정해야 한다. 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기 때문이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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