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실섭한 아내 기사의 사진

서울 대학로 한 연극 무대 위에 갑자기 찬송가가 울려 퍼집니다.

새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입니다. 등장 인물들은 방언 흉내를 내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며 자신이 깊은 신앙을 가지고 교회 생활 하는 사람임을 강변합니다. 지난 주말 본 연극 ‘늘근도둑이야기’의 한 대목입니다.

극중 하나님을 팔고, 십자가를 파는 두 사람은 잡범입니다. 이들은 젊은 형사 앞에서 자신들이 선한 사람이라고 억지 부립니다. 가방에서 나무 십자가를 꺼내 내밀고,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읽고 부릅니다. 황당한 도둑들이죠. 이 작품은 22년째 롱런하는 블랙코미디성 정극입니다. 관객은 이 장면에 대해 ‘기독교 삽화’로 받아들입니다. 기독교를 희화화하는 두 늙은 도둑이 밉지는 않습니다. 되레 연민이 들지요. 험한 인생을 산 이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악한 영에 속수무책인 교회

이 장면이 유독 눈에 들어왔던 건 오늘날 선하심 뒤에 숨은 온갖 삶의 군상이 떠올라서입니다. 두 늙은 도둑처럼 ‘밉지 않은 인생’들이 군상의 대부분이라면 ‘선하신 이’가 빛을 잃겠습니까? 한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악한 영들이 숨어들어서 후방도 치는 형세입니다. 전후방에서 공격을 받아 피 흘리시는 이가 있는데도 속수무책인 한국 교회…. 자업인 면이 없다고 할 순 없죠.

못 먹고 못살던 때 기독교 신앙의 입문 동기가 현세적 이익에 우선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즉 라이스 크리스천(Rice Christian)이 다수를 이룰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미성숙한 신앙 행태 때문에 오늘 이 시간이 불편해졌습니다. 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옆구리를 ‘말의 칼’로 찔러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전쟁과 같은 충격과 공포의 시기를 지나온 우리 부모, 조부모니까요.

지금 인터넷상에선 선한 영들이 쓰러져 가고 있습니다. 선하신 이가 보호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벌어지는 기독교에 대한 공격은 실섭(失攝)한 아내를 내다 버리는 악부의 비정함입니다. 악한 영의 선창에 홀린 선남선녀들이 ‘좀비’가 되어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크리스천의 어떤 선함도 마녀 사냥의 대상이 되어 비난을 받습니다.

제가 국민일보 섹션 ‘이웃’ 데스크할 때의 일입니다. 한 포털 토론광장에 올려진 무명 작가 아내의 간절한 소원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아내는 50대 중반 소설가 남편을 위해 슈퍼마켓 계산원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자식을 키웠지요. 절필 선언한 남편. 아내는 토론광장에 남편이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도록 호소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남편의 책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얘기였지요.

네티즌들은 그 호소에 귀 기울여 ‘나도 한 권 구입!’ 하며 댓글을 답니다. ‘이웃’이 부부를 조명했습니다. 우연하게도 그 부부는 신앙생활에 열심인 크리스천이었고요. 그 아내는 ‘이웃’과의 인터뷰에서 네티즌들의 응원이 너무나 고마워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신앙 고백을 합니다.

선창에 홀린 선남선녀

기사가 나간 후 토론광장은 반전되고 맙니다. “그 여자, ×독이었어? 책팔아 먹으려고 쇼한 거야?” “우리가 책 사줘서 수억 벌었겠네.” 무자비한 공격이 이어집니다. 작가가 번 것은 거의 없습니다. 초판도 팔리지 않았고, 팔렸다 해도 무명 작가에게 초판 인세를 줄 출판사는 흔하지 않으니까요. 출판사 입장에서 찍으면 손해거든요. 부부는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선창하는 자입니다. 선하신 이 뒤로 숨은 숙주. 매트릭스(matrix)에서 지휘하는 악한 영입니다. 선남선녀 네티즌이 아닙니다.

전정희 종교부장 jhh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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