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지전’ 용맹한 소년 중대장 신일영 대위 역 이제훈 “힘들었지만 배우로서 큰 자양분 얻어” 기사의 사진

6·25전쟁 막바지에 전장에서 스러져간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이야기를 다룬 ‘고지전’이 블록버스터들의 경쟁 속에서 300만 관객 고지를 향해 뚜벅뚜벅 진군하고 있다. 휴전을 위한 협상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1953년 상반기,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벌어진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담아낸 이 전쟁영화의 투톱 주연은 신하균(강은표 중위)과 고수(김수혁 중위)다. 하지만 이들 못지않게 눈에 띄는 얼굴이 있다. 악어중대를 이끄는 신일영 대위로 열연한 이제훈이다.

소년병으로 참전했지만 공을 세워 특진을 거듭한 용맹스러운 중대장이면서 전쟁 초기 부대원들을 살리려고 아군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상처에서 허우적대는 ‘소년 중대장’을 그는 인상 깊게 소화해 냈다.

이제훈은 봉준호 감독이 “신선한 발견”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올해 충무로가 찾아낸 최고의 샛별이다. 지난 3월 개봉된 독립영화 ‘파수꾼’에서 겉으로는 강한 체하지만 속마음은 여린 고교생 일진 ‘기태’를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게 연기해 찬사를 한몸에 받았었다. ‘고지전’에서의 연기는 그때의 찬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입증하기에 족하다.

지난 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이제훈은 영화에서 풍긴 강렬한 이미지와는 달랐다. 서글서글하고, 웃음이 화사하고, 몸매가 호리호리한 전형적인 꽃미남 스타일이었다.

제작비가 100억원이 넘는 ‘고지전’에 주연급으로 출연한 소감을 묻자 “액션영화라 힘들었지만 좋은 작품을 좋은 감독,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게 제겐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많이 알게 된 기회였어요. 앞으로 제가 배우로서 성장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는 ‘고지전’이 장훈 감독 작품이란 걸 알고 시나리오를 구해 봤는데 영화와 신일영 역이 너무 마음에 들어 다른 일 다 제쳐놓고 오디션에만 매달려 배역을 따냈다고 했다.

‘고지전’을 촬영하면서 멀게만 느껴지던 전쟁의 본질과 참상을 절감했다는 말도 했다.

“세트장이지만 폭탄이 터지는 상황에서 군복 입고 철모 쓰고, 총을 들고 산을 오르는 장면을 찍고 있을 때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어요. 이러다 정말 전쟁으로 가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었죠.”

이제훈은 ‘파수꾼’에선 고교생, 이번 ‘고지전’에서도 스무 살 ‘소년 중대장’을 연기했지만 실제 나이는 그보다 많은 스물일곱이다. 앳된 얼굴이라 나이보다 어린 역을 주로 맡았지만 제 나이에 맞는 멜로 연기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충무로의 무서운 신예지만 한때는 공학도의 길을 걸었다. 어려서부터 장기자랑이나 축제 무대 등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다는 그는 대학 진학 때 연극영화과를 가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고, 부모님도 반대해 2003년 고려대 생명정보공학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 대학에선 댄스 동아리에 가입해 ‘끼’를 발산해 보기도 했지만 연기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연극 극단과 독립영화계 등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제대로 연기자의 길을 걸어보자는 생각에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다고 한다.

이후 ‘약탈자들’(2009), ‘친구사이’(2009) 등 독립영화와 영화 ‘김종욱 찾기’(2010), 드라마 ‘세자매’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다졌고, ‘파수꾼’과 ‘고지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충무로에 각인시켜가고 있다.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 배우는 입장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역할이 무엇이든 잘 하고 싶다. 장르 가리지 않고, 작품 안에서 잘 녹아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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