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84) 용과 봉이 짝을 이루다 기사의 사진

그림 속에 적힌 두 토막의 글부터 읽어보자. ‘봉의 날개처럼 길고 짧은 대나무 관에서/ 용의 울음보다 처절한 소리가 월당(月堂)에 퍼지네.’ 앞에서 악기 모양을 설명하고 뒤에서 악기 소리를 묘사한 시구다. 어떤 악기가 봉 날개를 닮았고, 무슨 소리가 용울음 같은가.

소나무 한 그루가 세로 질러 화면 밖으로 뻗어나간다. 구도가 사뜻하다. 솔잎을 매단 가지와 부러진 가지가 위로 아래로 왼쪽 오른쪽으로 엇갈리고, 거욷한 몸뚱어리는 그림의 주인공인 양 소년을 곁으로 밀어낸다. 소년은 맨발에 가랑머리 차림이다. 소나무처럼 기운 몸태로 앉아 악기를 부는데 음에 취했는지 눈동자에 초점이 풀렸다.

소나무 껍질은 용의 비늘처럼 그렸다. 악기는 봉황의 생김새를 본떠 만든 생황이다. 시에서 읊은 그대로, 용봉(龍鳳)이 짝을 이룬, 참으로 공교로운 그림이다. 이게 자랑스러운 단원 김홍도의 결곡한 솜씨다. 생황은 구슬프도록 아름다운 음색을 지녔다. 들숨 날숨으로 내는 소리가 힘들어 오래 연주하면 마흔 살을 못 넘겨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 저 소년은 누구기에 버젓한가.

학자들은 주나라의 왕자 진(晉)이라고 말한다. 그는 높은 지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생황을 즐기다 학을 타고 날아올라 신선이 된 인물이다. 부귀공명을 떠나 작찬 풍류에 젖어든 그가 멋스러웠는지 시인 두보는 ‘그와 노니는 학조차 무리를 짓지 않는다’고 치켜세웠다. 소나무 아래 외따로 생황을 부는 소년의 입성을 보라. 허리에 깃털 옷을 걸쳤다. 바야흐로 우화등선(羽化登仙)할 참이다. 신선은 속세를 떠나도 속세는 신선을 등지지 않는다고 단원은 말한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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