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지금도 마로니에는 기사의 사진

덕수궁은 고종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통치했고, 양위했고, 승하했다. 황제 자리를 내놓은 이유는 헤이그 밀사사건이었다. 일제는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한 밀사를 빌미 삼아 퇴위를 강요했다. 7월 19일이었다. 순종은 창덕궁으로 떠나고 고종은 덕수궁에 남았다.

헤이그에 간 특사들은 의장인 러시아 대표 넬리도프에게 매달렸으나 회의 참석에 대한 권한은 주최국에 있다고 떠넘겼다. 네덜란드는 을사조약을 들어 특사의 대표성을 부인했다. 참석해서 ‘한국을 위해 호소한다’고 역설했다 쳐도 성과는 미미했을 것이다.

덕수궁 석조전 동관과 서관 사이에 키 큰 나무가 서 있다. 1912년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의 회갑에 맞춰 선물한 칠엽수다. 네덜란드의 미안한 마음이 담겼을까. 잎이 일곱 조각인 칠엽수 중 서양에서 온 것을 ‘마로니에’라 부른다. 이토와 고종이 떠난 덕수궁에는 100년 된 마로니에만 남아 시방 무성한 잎을 펄럭이고 있다.

손수호 논설위원 shsh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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