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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남호철] 한류와 혐(嫌)한류

[데스크시각-남호철] 한류와 혐(嫌)한류 기사의 사진

지난달 말 한국의 ‘얼짱’ 여성 격투기 선수가 일본 방송에 출연, 일본의 남자 코미디언들과의 ‘불공정한’ 격투에서 일방적으로 맞는 모습이 보도됐다. 보호 장구조차 갖추지 않은 임수정(26)씨에게 거구의 선수급 남자 코미디언은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논란을 낳았다. ‘쇼’인줄로만 알고 나섰다가 잇따라 쓰러지는 임씨의 모습에 일본인들은 통쾌해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17일에는 K팝의 떠오르는 6인조 그룹 ‘비스트’가 일본 입국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되돌아오면서 갖가지 뒷말을 낳고 있다. 한국의 지상파 방송에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말해온 ‘개념돌’ 비스트의 입국을 일본 정부가 거부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울릉도행 기도 등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잇따르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일부 사례이긴 하지만 이 같은 사태의 이면에는 ‘한류(韓流) 열풍’이 깔려 있다. 최근 아시아권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의 매력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K팝의 열기가 이를 대변해 준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한류가 위세를 떨칠수록 이를 곱지 않게 보는 이들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난타당하는 임씨의 모습을 보고 한류의 득세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일본이 경기를 통해 스트레스를 푼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혐한(嫌韓) 네티즌들은 비스트의 입국 거부를 환호했다.

아쿠아시티와 비너스포트 등이 밀집해 일본 도쿄를 대표하는 관광명소 중 한 곳인 오다이바의 후지TV 앞에서 일본의 혐한세력들이 주축이 된 한류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후지TV가 일본에서 일고 있는 한류 붐을 조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매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후지TV는 낮 시간대에 한국 드라마를 집중적으로 편성하고 한류 스타를 프로그램에 기용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시위는 ‘2채널(2ch)’이라는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들이 주도했다고 한다. 이 사이트에는 한국 비판글들이 여과 없이 게재된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국제경기에서 이기면 어김없이 “한국이 심판을 매수해서 승부를 조작했다”는 글이 올라오고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들이 사실처럼 실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국내 네티즌들은 광복절인 지난 15일 2ch 게시판 등 일본 온라인 공간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기도 했다. 다행히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며 공격 계획을 취소해 최악의 ‘사이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같은 일에 사사건건 예민하게 반응하고, 공격적으로 나서면 혐한류는 점점 더 커지게 되고 결국 문화를 내보내려는 쪽만 손해를 보게 된다는 판단에서다.

반(反)한류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는 일본 배우 다카오카 소스케의 입김도 작용했다. 영화 ‘박치기’에서 재일교포 역을 맡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채널8(후지TV)은 한국TV라고 생각한다’는 등의 글을 올려 시위를 부추겼다.

하지만 이 같은 혐한류 분위기는 후지TV뿐 아니라 상업주의에 기반을 두는 모든 공중파 TV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일본인 사이에서도 ‘유치한 국수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뇌과학의 선구자 모기 겐이치로 박사는 트위터에서 후지TV 불시청 운동에 대해 “너무 유치하다”며 “유치한 자국문화주의는 어리석을 뿐 아니라 일본을 더욱더 약체로 만들 뿐”이라는 글을 남겼다.

문화수출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함께 뒤따르게 마련이다. 중국과 동남아 등에서 이미 이러한 반작용을 경험한 바 있지 않은가. 관건은 콘텐츠의 질일 것이다. 혐한 외국인에게 적대적·공격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보완해야 할 사항을 깨치고 콘텐츠 질 높이기에 집중하는 자세가 지혜로워 보인다.

남호철 디지털뉴스부장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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