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조성기] 스스로 판단하라 기사의 사진

명심보감에 ‘중호지필찰(衆好之必察) 중오지필찰(重惡之必察)’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스스로 살펴서 판단하라, 모든 사람이 싫어하더라도 반드시 스스로 살펴서 판단하라는 뜻이다.

대중조작이 가능한 시대

요즈음은 대중매체 시대로 특히 텔레비전과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하여 얼마든지 대중의 판단을 조종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것을 대중조작이라고 한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변의 눈치를 보며 의존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심하다. 심지어 문학이나 예술을 평하는 평론가들 중에도 그런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오는 24일 학교 무상급식을 두고 주민투표가 있다고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쪽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저쪽 말을 들으면 저 말이 맞는 것 같아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자들도 스스로 판단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자기 생각 없이 교회 조직의 판단에 의존해버린다.

의존적인 판단을 내리는 소설 주인공으로 유명한 인물은 안톤 체홉의 빼어난 단편 ‘귀여운 여자’의 여주인공이다. 극장 주인과 결혼했을 때는 사람들이 무식해서 연극 구경을 잘 하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그런데 극장 주인이 죽고 산에서 나무를 베는 목재상 남자와 결혼했을 때는 사람들이 일은 하지 않고 연극이나 보러 다닌다고 욕을 한다.

신앙을 가지는 것도 누구의 강요에 의하여 할 수 없다. 스스로 판단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은 이렇게 하라, 저것은 저렇게 하라는 식으로 일일이 간섭하시는 분이 아니다. 큰 인생방향을 주시면서 스스로 판단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해주신다.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목적도 스스로 판단해 인생을 살아가는 자율적인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교회에서 신자들을 양육하는 목적도 스스로 판단해 이 시대를 분변하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자율적인 신자들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자율적인 신자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 ‘누구도 우리를 가르칠 필요가 없는’ 단계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요한 사도는 요한1서 2장 27절에서 권면하고 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 단계는 신앙 선배도 없고 자기 뜻대로만 행하는 독립적이고 교만한 단계가 아님은 말할 필요가 없다.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한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라는 역설적인 표현 역시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성숙한 신자, 책임감 있는 신자가 되라는 권면이기도 하다.

성숙하고 책임 있는 신자 돼야

과연 한국교회가 신자들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율적인 성숙한 신자들로 키우고 있는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 마리아처럼 여기며 그렇게 양육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오히려 신자들을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유아화시켜 말을 잘 듣는 초등학생 정도로 훈련시키고 있지 않은지 우려된다.

어느 교회에서 건축헌금을 작정할 때 자기가 지니고 있는 자동차의 수준을 참작하라는 헌금요령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한 적이 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께서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누가복음 12:57)고 책망하고 계신다.

조성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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