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85) 석 달 열흘 놀아보라고? 기사의 사진

몹쓸 짓 벌어지는 대갓집 뒤뜰이다. 사방관 속에 상투는 동여맨 지 얼마나 됐을꼬. 소맷부리 꼬일 정도로 냅다 손목을 잡아채는 저 양반, 상판대기를 보니 턱밑에 수염 한 톨 없이 맨송맨송하다. 벌건 대낮에 낭패를 당한 여종은 엉거주춤 엉덩이를 빼고 머리를 긁적이는데, 집 비운 안방마님 돌아올세라 사내는 시방 몸이 달았다.

그림을 그린 혜원 신윤복은 이 판국에도 너스레를 떤다. 적어놓은 시가 그렇다. ‘빽빽한 잎사귀에 초록이 쌓여가니/ 가지마다 붉은 꽃 떨어뜨리네.’ 젊은 양반의 계집질을 그저 꽃 하나 꺾는 놀이에 견준 셈이다. 하기야 가엾은 몸종이 무슨 수가 있으랴. 양반이 집안 아랫것에 딴 마음을 품으면 ‘호랑이가 고깃덩이를 노리는 격’으로, 수작 걸거나 지분거리면 ‘해오라기가 물고기 엿보는 격’으로 낄낄대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혜원의 난봉기질은 작품마다 질펀하다. 저 괴석은 부잣집 조경용으로 인기 있던 태호석(太湖石)이다. 불끈 솟은 바위는 사내 음심과 닮았다. 수상한 것은 마당에 심어놓은 수목이다. 나무 백일홍이다. 백일홍은 우리말로 배롱나무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지만 배롱나무는 꽃이 지고 피고 거듭하며 석 달 열흘 내내 붉다. 때는 늦여름, 저 꽃이 지면 가을이다. 혜원의 속내가 훤하다. 열흘로는 성에 안 차니 한 백일 더불어 놀아보잔 소리다.

게다가 배롱나무는 속명이 간지럼 나무다. 겉이 옷을 벗은 맨살처럼 반질반질한데, 줄기를 살살 간질이면 가지가 바르르 떨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낯 뜨거운 행패를 재미삼아 건드려보는 짓거리로 묘사한 혜원, 18세기에 태어났기에 몸 성히 지냈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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