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최소한 예의를 지키지 못한 구단 기사의 사진

김성근 감독의 경질로 지난 한 주는 정말 어수선했습니다. 김 감독이 느닷없이 기자들 앞에서 이번 시즌을 끝으로 SK를 떠난다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지요. 저는 김 감독의 팬이기는 하지만 시즌 도중에 이런 발표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에 조용히 물러나면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장과의 면담 기사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기사가 사실이라면 구단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이더군요. 재계약은 시즌 후에 논의하기로 하자고 하면서 양해를 구할 사람이 있다고 했다는 겁니다. 감독이 재계약을 하는데 구단주 말고 다른 사람의 양해를 구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요.

그럼 구단주가 오케이 사인을 내도 ‘다른 사람’이 안 된다고 하면 재계약을 못한다는 것인가요? 다른 사람이란 도대체 누구인데 이런 막강한 권한이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단에서는 그냥 시즌 마무리한 후에 논의하자고 했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속으로 다른 속셈이 있었을지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재계약을 논의하는 데 최소한의 예의 아니겠습니까. 이런 굴욕을 당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낸다는 것은 제가 볼 때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저버리는 일입니다. 눈치도 없이 다른 사람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발언을 한 것 아닐까요.

다른 사람의 실체는 바로 다음 날 밝혀졌습니다. 구단이 감독을 경질하고 감독 대행을 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만수 감독 대행은 기자회견에서 뉴욕 양키즈와 같은 명문 구단을 만들겠다고 호기 있게 말했습니다. 저는 팀을 인수한 구단주의 회견인 줄 알았습니다. 후반기 잔여 임기를 맡은 감독 대행이 할 수 있는 말은 전혀 아니었지요. 그 자신감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아마도 구단의 언질이 있었겠지요. 감독을 경질한 것도 감정적으로 보였습니다. SK를 명문구단으로 이끈 감독을 기다렸다는 듯이 해고하는 것은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조금이라도 그리고 한번이라도 팬들을 생각했다면 해고를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구단에 대한 항명으로 받아들였으니 해고를 했겠지요. 사퇴를 만류했는데도 일방적으로 발표를 했으니 항명으로 비춰질 수 있었겠네요.

하지만 왜 그런 발표를 하게 됐는지 그리고 팬들의 심정을 생각했다면, ‘감독 의사를 존중한다. 남은 시즌을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는 식의 발표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했다면 이런 소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시즌 후에 다시 협상할 여지도 남게 되니까요. 감독이 아무리 인기가 있고 명장이라도 결국은 근로자인 것이지요. 구단주는 사용자이고. 하지만 김 감독이 사퇴 회견에서 말했듯이 감독도 팀을 선택할 권한이 있습니다. 근로자의 거취가 언제나 사용자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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