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궁궐에 웬 너럭바위? 기사의 사진

고궁은 고적하다. 왕조가 사라졌으니 통치공간일 수 없고 왕족이 없으니 생활공간도 아니다. 일제는 복고운동을 두려워해 궁궐에 담긴 조선의 기억을 철저히 지웠다. 국권을 되찾은 대한민국은 줄기차게 복원에 나섰으나 아직도 듬성듬성하다.

창경궁은 아예 희롱을 당했다. 지금은 사라진 장서각 건물과 동물원이 대표적이다. 복원보다 잔재를 없애는 데 치중했으니 궁궐로서는 짜임새가 없다. 바위가 널브러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궁궐의 바위가 수상해 자세히 보면 기둥을 세운 흔적이 있다. 동궐도에도 양화당 동쪽에 작은 맞배지붕 하나가 보인다.

궁궐지에 따르면 이 집은 애초에 서적을 보관하고 문신들이 책을 읽던 서당이었다. 집 앞에 물을 끌어들이고 괴석을 놓아 분위기를 돋웠다. 그러다 1692년(숙종 18년)에 정일재(精一齋)로 개명한 뒤 아기를 받는 산실청으로 사용했다. 이름에서 후손을 기다리는 뜻이 담겼다. 창경궁에 건물을 복원한다면 정일재가 일순위일 것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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