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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한민수] 권력의지

[데스크시각-한민수] 권력의지 기사의 사진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결국 내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진영에서 내세우는 가장 큰 근거는 ‘그에게는 권력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문 이사장이 속내에 무서운 권력의지를 숨겨놨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과연 내가 그런 기대를 감당할 만한지, 참 자신이 없다”고 한다.

권력의지(權力意志)라는 용어는 철학에서 나왔다. 니체 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남을 정복하고 동화해 스스로 강해지려는 의지를 말한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 의지가 존재의 가장 심오한 본질이며 삶의 근본충동이라고 했다. 이런 본래 의미가 21세기 대한민국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통칭되고 있는 셈이다. 어느 순간 경제, 복지, 대북 정책 등과 함께 권력의지는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선 후보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요조건’이 된 것이다.

이런 사회적 풍토는 1993년 군인 대통령 시대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익히 알려진 대로 중학교 때부터 책상 옆 벽면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적어 놓고 권력의지를 불태웠다. 전설 같은 이 글귀는 지금도 경남 거제의 김 전 대통령 기록관에 전시돼 있다. 이어 정권을 잡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권력의지가 전임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는 71년 첫 출마부터 4수 끝에 대통령이 되기까지 26년 동안 이 의지를 꺾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도 권력의지가 약하다고 할 수 없다. 비록 스스로 대통령 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세상을 확 바꿔보고 싶다는 꿈을 꾸고 살았다. 이 대통령도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는 각오가 남달랐다.

당장 내년에 뛸 대선주자들의 권력의지는 어떠한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권력의지는 이미 ‘검증’됐다고 볼 수 있다. 2006년 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돼선 절대 안 된다’고 결기를 보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권의 지난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권력의지 면에서는 어느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는다는 게 그를 오랫동안 봐온 지인들 얘기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나라당을 탈당한 지 4년4개월이 흘렀다.

요즘 권력의지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는 주자들도 있다. 수천억원의 사재까지 출연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선두에 있고,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도 사석에서 “다시 한번 우리(친노세력)가 (권력을) 잡으면 정말 잘 해보자”고 벼른다고 한다. 바야흐로 대선을 16개월 앞두고, 잠룡(潛龍)들이 저마다 권력의지를 가다듬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의 예에서 보듯 이런 권력의지가 집권 후 통치능력으로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됐는데!”라는 오기(傲氣)와 맞물리면서 독단(獨斷)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언제나 국민 편에 서겠다던 역대 우리 대통령들이 권좌에 오르자마자, 변심하는 것이다.

결국 득보다는 해를 끼칠 가능성이 다분한 예비 대선주자들의 권력의지를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유권자들의 접근이 달라지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 누가 더 권력의지가 강한지를 보지 말고, ‘집권비전’을 평가해 보면 어떨까.

한마디로 “나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오로지 권력의지만을 키우는 이들을 외면하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을 이렇게 끌고 가고 싶다”는 후보를 뽑자는 얘기다. 그간 우리는 엄청난 권력의지 뒤편에서 날림으로 만든 집권비전-다른 말로 옮기면 공약이 가장 가깝겠다-으로 인해 집권 후 온 나라가 뒤죽박죽으로 된 경우를 여러 차례 봐 왔다. 이제 18대 대통령부터는 권력의지가 아닌, 집권비전이 꽉 찬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부터 우리 눈을 여기에 맞춰 단련하자.

한민수 정치부장 ms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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