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 기사의 사진

20여년 전 평양에 갔을 때다. 우리 기자 일행을 맡은 그쪽 현장 책임자와 단둘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얘기 중에 기자가 자꾸 의문과 반론을 제기하자 그는 “남조선 기자선생들은 무슨 일이든지 꼭 뒤집어 보려는 속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무슨 말을 하면 액면 그대로 좀 믿어달라는 것이었다.

남조선 기자들뿐이겠는가. 제대로 된 기자라면 뭐든지 뒤집어 보려는 속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속성의 발로일까. 만일 민주당 등 야당이 주장하는 ‘전면 무상 급식 안’을 서울시 주민투표에 부쳤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를 생각해 봤다. 오세훈의 ‘선별적 무상급식 안’을 좌절시킨 주민투표율 25.7%를 깰 수 있었을까. 말을 조금 바꿔보자면 야당이 투표에 적극 참여하여 ‘전면 안’과 ‘선별 안’을 놓고 정면 승부를 했더라면 ‘전면 안’이 이길 수 있었을까. 아마 야당들도 자신 있게 예스라고 대답하긴 힘들 것 같다.

주민투표 결과 뒤집어보면

이번 주민투표는 오 전 시장이 위험한 도박,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애초부터 지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었다. 야당들이 투표 거부운동을 벌이고,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낮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 내지 혐오 층이 두텁고, 여권 내 박근혜계가 투표에 소극적 내지 부정적 입장인 상황에서 서울시민 3분의 1을 투표장으로 부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보편적 복지 개념이 바탕을 넓혀가고 있는 분위기가 아닌가. 물론 이 도박으로 정권은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됐으나 오세훈 개인은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긴 하다.

기자가 투표 결과에 대해 뒤집어 보기를 하려는 건, 한나라당 편을 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이 이번 투표 결과를 놓고 “사실상 승리” 운운하는 것은 패배에 따른 충격을 줄이려는 자위로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고 민주당 인사들의 주장대로 이번 투표 결과가 과연 “무상 보육, 무상 의료, 반값등록금을 실천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일까 하는 의문에서 뒤집어 보기를 하고 싶어진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 이번 투표로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기고만장해 있다. 말끝마다 나오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그들의 자신감이 그렇고,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는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될 것인 양 20명 안팎의 자천 타천 후보군이 난립하고 있다는 소식이 그걸 말해준다. 내년 봄 총선과 겨울 대선에서도 승기를 잡았다는 듯 들뜬 분위기다.

受權정당을 자임한다면

물론 정국의 주도권과 선거라는 게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대세가 좌우되는 경향이 있어 이번 투표로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또 바람 불 때 연 날린다는 속담처럼 민주당은 지금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릴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놓고, 기자가 했듯이 한번쯤 뒤집어 보기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주민투표율 25.7%를 한나라당의 참패와 민주당의 완승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닌지 재점검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복지 정책이나 인물 등을 놓고 한나라당과 1대 1 정면 승부를 하고, 박근혜계 등이 소극적이었던 이번 투표와는 달리 여권이 전열을 정비하여 단일 대오로 나올 때 국민들이 반드시 민주당을 선택해줄지도 깊이 있게 계산해봐야 한다. 이번 투표가 크게 상처를 입은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우리 국민이 유달리 승자에 대해 견제 심리가 강하다는 점도 고려에 넣어야할 사항이다.

특히 복지 정책과 관련해서는 물론 무상 시리즈에 더 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국가나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을 경우 무조건 박수만 칠 정도로 어리석지 않은 게 또 우리 국민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진정으로 정권 대체 세력을 자임한다면 집권 후의 나라 살림도 생각해서 복지 정책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할 것이다.

성경 말씀에도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일렀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멸망의 앞잡이”라고 경고했다.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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