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86) 원숭이의 사랑과 보은 기사의 사진

어미와 새끼 원숭이가 절벽 아래를 살핀다. 청록색 이끼와 잔풀로 덮인 바위는 허공에 깎아 세워 의지 가지가 안 보인다. 뛰어내리기에 어림없다. 살금살금 물러서며 등 뒤로 붙는 새끼와 한 발 앞 디딘 어미의 자세에 조심성이 넘친다. 불안한 눈동자가 도리어 귀엽고 모자의 믿음성이 사랑스럽다.

그림 아래에 ‘조선 하담(荷潭)’이라 씌어 있다. 19세기 무렵 일본에 간 화가가 그렸는데 하담이 누군지는 모른다. 생김새가 일본산 원숭이와 닮았다. 미끈한 터럭을 보라. 함함하기 그지없다. 에어브러시로 뿜은 듯이 몽롱하게 처리해 양감을 살렸다. 조선에 원숭이는 살지 않지만 그림은 더러 남았다. 천도 복숭아를 안고 있거나, 실을 들고 장난치는 원숭이들이 소재로 나온다.

어미가 새끼를 등에 업으면 무슨 의미일까. 한자로 등은 배(背), 원숭이는 후다. 같은 발음인 배(輩)와 후(侯)를 넣어 ‘배배봉후(輩輩封侯)’라고 쓰면 그 뜻이 ‘연달아 제후 자리에 오른다’가 된다. 자손들이 높은 벼슬로 나아가길 바라는 셈이다. 굳이 ‘출세’로 새기지 않은들 어떠랴. 어미와 자식의 다정스러움이 눈에 드는 그림이다.

원숭이의 자식 사랑은 고사에 전한다. 새끼를 떼어 놓았더니 어미가 슬피 울다 죽었다. 배를 갈라보니 어미의 창자가 끊어져 있었다. 자기를 보살펴 준 거지에게 보은한 원숭이 얘기도 있다. 거지는 원숭이 재주를 보여주고 밥을 얻어먹었다. 거지가 죽자 원숭이는 행인에게 절하며 돈을 구걸했다. 그 돈으로 화장을 치르는 날, 원숭이는 함께 불에 뛰어들었다. 원숭이처럼 생기면 욕이고 그 마음을 닮으면 착하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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