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병맛’ 을 아느냐… 인터넷 신조어 ‘병맛’의 사회학 기사의 사진

【병맛】 대한민국의 인터넷 유행어로,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는 어려우나, 어떤 대상이

‘맥락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주로 대상에 대한 조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터넷상

에서 병맛의 개념을 가장 널리 표방하는 방식은 웹툰으로, ‘병맛 만화’로도 불린다.

병맛 만화의 특징은 대충 그린 듯한 작화체, 비정상적인 이야기 구성 및 내용이다. <위키백과>

‘병맛’을 분석한 논문이 나왔단다. 최근 열린 부천국제만화축제에 ‘병맛카페’란 것도 등장했었지. 혹시 ‘병맛이 뭐지? 콜라 병, 사이다 병의 맛인가?’라고 생각하신다면 아래 글을 잘 읽으세요!

언젠가부터 인터넷 공간에서 네티즌들은 ‘병맛’이란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현실생활에선 쓰기 뭣하지만 웹공간에선 익숙한 이 단어가 무엇이기에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됐을까? 궁금증에 논문을 펼쳐들었다. 스노비즘(snobbism, 고상한 체하는 속물근성), 스페키에스(species, 라틴어로 나의 한계를 초과하는 어떤 것과의 관계 맺음의 형식) 등 뜻을 알 수 없는 단어가 쏟아진다. 쉽게 생각하고 책을 집어 들었는데 웬걸. 한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다. 이 상황이 바로 ‘병맛’이다.

‘병맛론’ 제1장 병맛의 이해

병맛은 인터넷 신조어다. 병맛은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어떤 대상이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한다.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고상한 표현은 아니다. ‘병신’이라는 직접적인 욕설을 순화한 단어라는 설도 있다. 인터넷에서는 ‘애비애미도 없는 놈’ 같은 심한 욕설은 ‘매미같은 놈’으로 순화되곤 한다. 인터넷 매너이자 네티즌들의 자정작용의 결과다.

병맛은 한심한 인간의 한심한 작태를 지적할 때 쓴다. 한 정치인이 보온병을 들고 “이것이 포탄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거 참 병맛이군”이라고 비웃어주면 된다. 프로야구 경기에서 A와 B팀이 10대 10의 막상막하 경기를 펼쳤는데 화끈한 타격전이 아니라 실책으로 점수가 많이 난 경기였다면 이를 두고 “병맛 같은 시합이었어”라고 하면 된다. 이밖에도 지치고 힘들었던 하루가 끝난 뒤 자조적으로 “오늘 참 병맛 같았어”라고 되뇌어도 되고, 매일 폭우가 쏟아지는 창밖을 보며 “요즘 날씨 참 병맛 같구나”라고 투덜거릴 수도 있다.

종종 병맛은 비난이 아닌 찬사로 돌변하기도 한다. 개그맨이 보온병을 들고 정치인과 똑같은 톤으로 “이것이 포탄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개그맨에게는 ‘진짜 병맛ㅋㅋㅋㅋ’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최근 일부 대중가요들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나열하는 병맛 가사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이도 일부러 병맛의 매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병맛론’ 제2장 병맛 웹툰의 인기비결

도시문명을 누리는 현대인 주인공. 그는 어느 날 문득 현대인의 필수품 차가 없어 허전하다는 것을 깨닫고선 차를 사러 간다. 경차를 골랐더니 판매원은 “안전이 중요하다”면서 경차는 안 된단다. 그래서 소형차를 선택했더니 이번엔 중형차가 충돌했을 경우 위험하단다. 중형차를 사려니 대형차가 와서 들이받을게 걱정되고 대형차는 트럭, 트럭은 더 큰 트럭이 걱정된다. 결국 25.5t 덤프트럭을 샀다. 여기까지는 무난한 전개다.

주인공은 신나게 25.5t 트럭을 몰다가 무궁화호와 사고를 낸다. 이야기는 ‘안전하고 튼튼한 대중교통 기차를 애용합시다-철도청’이란 어이없는 결론으로 막을 내린다. 병맛 웹툰의 대표작 이말년씨리즈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내 몸에 꼭 맞는 차’의 내용이다. 일반적인 이야기 구성인 기승전결(起承轉結) 대신 결말이 병맛인 이른바 ‘기승전병’의 구조가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병맛의 매력이 두드러지는 지점은 바로 웹툰(인터넷+카툰)이다. 웹툰은 젊은 층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틀임을 알아두자. 1990년대에 청년들은 영화에 열광하며, 영화를 매개로 소통했다. 웹툰은 요즘 청년들에게 90년대 영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웹툰 중에서도 ‘정열맨’의 귀귀와 ‘불암콩콩코믹스’의 최불암, ‘이말년씨리즈’의 이말년 등이 대표 작가들로 꼽힌다.

병맛 웹툰은 왜 인기 있을까? 유식하게 말하자면 병맛 웹툰은 우리 시대 주변 계층의 하위문화를 대표한다.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스타일리시하다’는 표현과 웰 메이드의 흐름 반대편의 B급 정서를 만화가 먼저 받아들인 것”이라고 평했다. 과거 요리프로그램 진행자는 깔끔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청결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영국 최고 요리사로 떠오른 제이미 올리버는 청바지를 입고 손도 대충대충 닦고선 요리하는 데도 대중이 열광한다. 병맛 웹툰 인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이없는 구성, 대충 그린 듯한 ‘결핍’ 역시 웹툰의 인기 요소다.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병맛카페’를 기획했던 정승현 큐레이터는 “과거 완벽하게 성공한 인간상에 열광했다면 최근 들어서 완성도가 떨어지고 어리숙한 그림을 내세운 만화에 웃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면서 “그래서 병맛카페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병맛카페에선 청국장과 우유를 섞은 병맛 음료가 팔렸다.

어른들은 외면했고 10대 중·고등학생과 20대는 열광했다.

‘병맛론’ 제3장 잉여스러운 자신에 냉소

김수환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이파리)’ 중 ‘너희가 병맛을 아느냐?-웰컴 투 더 <이말년 월드>’라는 글에서 병맛 인기를 분석했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온갖 방식을 동원해 구성원들에게 ‘성공’을 강요한다. 늘 전교 1등을 하는 옆집 ‘엄친아’, 대기업 XX전자에 취업한 뒷집 ‘엄친딸’은 공부도 못하고 취업도 못하는 찌질한 내 주위를 떠돈다. 여기서 성공은 홍정욱 의원이 화장실에서 사전 찢어가며 공부했다는 ‘7막7장’식의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한비야도, “세상에 너를 소리치라”는 빅뱅도 나름대로 성공 서사를 갖췄다는 점에서 7막7장과 같은 기제로 작용한다.

누군들 성공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성공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부모님의 등골을 빼가면서 대학을 졸업해봐야 좋은 직장은 유학파, 명문대 차지다. 지잡대(평범한 지방대학) 출신을 기다리는 것은 비정규직 뿐. 그렇다고 지잡대조차 안나오면 영원히 ‘고졸의 벽’을 넘을 수 없다. 성공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성공할 방법은 없는 막막한 현실, 완벽을 추구하고 완벽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어설픈 그림과 우연성, 비합리성으로 일관하는 병맛 웹툰은 88만원 세대에게 쉬어갈 여유를 준다.

사회가 이렇다보니 스스로를 패배자로 인식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이들은 병맛 웹툰을 통해 연대감을 느낀다. 과정은 이렇다. 앞서 언급한 ‘내 몸에 꼭 맞는 차’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주인공은 ‘10억원을 받았습니다’라고 하면서 정원에 물을 뿌리는 아내를 떠올린다. 남편이 죽고 나서 보험금 10억원을 받았다는 내용의 어느 보험회사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 장면은 알면 더 즐길 수 있지만 몰라도 그뿐인, 한마디로 잉여 지식이다. 병맛 웹툰에는 일정 시간 이상을 인터넷에서 보내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인터넷 코드에 대한 패러디가 난무하는데 독자들은 이를 발견하고 해독한다. 이 과정에서 곧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너도 알고 있다’는 것,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잉여짓’을 작가인 너 또한 하고 있고 댓글을 다는 다른 이들도 알고 있다는 모종의 공감대가 생기고 병맛 웹툰의 연대의식이 작동하게 된다.

병맛 웹툰에는 당위도 깨달음도 없고, 위안도 치유도 없다. 하지만 막막한 현실에 처한 청춘들은 병맛나는 세상을 냉소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찌질한 자신을 돌아본다. 병맛 웹툰은 낄낄대는 웃음이 어느 순간 냉소와 교차되며 ‘잉여스러운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잔혹한 장소인 동시에 나만 찌질한 잉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동질감 확인의 장소인 것이다.

결론: 병맛은 병맛일 뿐, 그렇게 진지해야 해?

병맛 웹툰에 대한 열광 속에는 청년층의 소통과 좌절, 희망이 녹아있다. 병맛의 시대, 병맛 웹툰이 한 순간의 위로일지, 청년층의 씁쓸한 문화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병맛은 가벼워야 매력적인데. 이런 식의 교훈조로 끝내면 병맛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만다. 불암콩콩코믹스의 작가 최불암(최의민·27)은 “만화는 만화 자체로 그냥 재미로 가볍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독자들이 내 만화를 개그 만화의 일종으로 재미있게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병맛이라고 해서 작품자체가 쓰레기는 아니다. 예술성이 있으니 대중이 좋아한다”면서 “좋은 만화와 병맛 만화를 구별 짓는 시각 자체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정열맨 작가 귀귀(김성환·31)도 “그냥 생각없이, 머리를 비우고 가볍게 즐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거운 결말은 병맛 작가들의 바람과도 어긋난다.

뭔가 병맛에 대한 그럴듯한 문화비평을 써 보고자 칼을 뽑았는데 정작 기사는 병맛이 되고 말았다. 윗선에서 “기사가 이게 뭐냐”고 호통치는 장면이 눈에 선하다. 나는 병맛이 된 기사를 두고 “원래 생각했던 기승전병의 구조입니다”라고 우길 참이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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