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정치, 그 빠져나오기 힘든 블랙홀 기사의 사진

코미디, 그중에서도 블랙 코미디의 소재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게 정치와 정치인 아닐까 싶다. 특히 언론의 자유가 없는 체제에서는 더 그런 것 같다. 힘깨나 쓰는 사람들을 희화화함으로써 힘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 터이다.

코미디뿐 아니라 언론이나 일반인들의 도마 위에 가장 많이 올라 난도질을 당하는 것도 정치와 정치인이다. 저렇게 욕먹는 일을 왜 할까 싶고, 그런 걸 보면 공직 선거 때 후보가 정원에 미달하지나 않을까 걱정해야 될 것 같기도 하다.

기성 정치 불신이 부른 태풍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평소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거나 심지어 정치 혐오감을 드러내던 사람들까지도 어떤 계기가 되면 정치 개혁, 새로운 정치를 외치면서 그 판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인이 들려주는 자신의 경험담. 남편이 정치를 하면 이혼하겠다던 부인이 남편이 출마를 하자 바로 그날부터 꾸미고 다니던 명품들을 장롱 속에 넣어두고 운동화에 몸뻬 차림으로 논두렁 밭두렁을 헤집고 다니더란다.

그런 것을 볼 때 정치라는 게 엄청난 중력으로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임에 틀림없다. 어느 분야든 상관없이 성공한 사람이라면 정치권에서 그의 명성과 인기를 상품화하기 위해 유혹하고, 또 그 유혹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정치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으면 처음엔 “정치는 내 적성이 아니다. 관심 없다”고 손사래를 치던 사람들도 선거 때가 되고 정치권의 러브콜이 있게 되면 대개는 “고민해보겠다”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둔 뒤 결국은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명분으로 그 판에 뛰어든다. 지금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후보의 다크호스로 부상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이 범주에 속한다.

문재인 전 노무현대통령비서실장, 박원순 희망제작소상임이사,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이 앞으로 있을 여러 선거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권 밖에 머무르면서 일정 거리를 두고 있던 이들이 이처럼 다크호스로 부상한 것은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 내지는 혐오 현상 때문이다. 또 이는 정치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그들의 참신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오는 등 긍정적 효과가 크다.

지금 일도 충분히 보람있다

그럼에도 걱정스러운 것은 사회 각 분야에서 국가 사회를 위해 크게 공헌하던 사람들이 이런저런 사연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 그 척박하고 혼탁한 토양 때문에 패배자 비슷한 모습으로 퇴장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정치인으로서 그들의 실패를 예단할 필요는 없다. 다만 성공한 벤처 사업가, IT전문가, 연예인, 사회운동가 등 많은 인재들이 그 명망과 함께 정치에 입문했다가 정파의 일회용 소모품으로 이용되거나, 스스로 자기 길이 아님을 알고 물러난 우리의 과거 많은 경험이 그러한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한다.

기자가 언젠가도 한번 말했듯이, 횟감으로 쓰는 게 좋을 싱싱한 생선을 가져다 자반이나 매운탕 거리로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게 우리 정치권이다. 천재를 바보나 조폭으로 만들기도 한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보스가 돼 조직을 장악하기 전에는 조직의 행동 수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정치 풍토다. 그런 게 싫어 무소속으로 정치를 한다는 건 태풍 속 바다에서 일엽편주(一葉片舟)를 저어가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정치가 아닌 분야에서 국가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사람들이, 국민을 걱정하기는커녕 걱정의 대상이 되고, 갈등을 풀기는커녕 갈등을 생성 조장하는 정치판에 들어가 정치를 쇄신하겠다는 뜻을 세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역할들도 정치 못지않게 의미 있는 일이다. 또 정치판이 참신성과 아이디어와 의욕만으로 바로잡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그 블랙홀에 접근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여론이나 정치권이 종종 다크호스를 하늘 높이 헹가래쳐놓고선 손을 빼버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