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87) 기러기 날아가고 나면 기사의 사진

밤기운이 서늘해져 풀잎에 이슬이 맺히면 백로(白露)다. 순진한 아이가 “이슬은 풀이 흘리는 땀”이라고 말한다. 이슬은 땀땀이 반짝인다. 영롱해도 그러나 가뭇없다. 삼국지의 조조는 시에 한숨을 싣는다. ‘술잔 앞에서 노래하지만/ 인생이 그 얼마나 되는가/ 견줘보니 아침 이슬 같구나.’

가을 이슬은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기러기는 자국을 남긴다. 조선 중기의 화가 이징이 그린 이 고적한 산수화를 보라. 하늘 구만리 울어 예다 강가 모래톱에 편대를 이룬 채 날아드는 기러기는 가을이 깊음을 알린다. 언덕 위에 집 한 채, 팔작지붕 겹처마에 중층 누각이 버젓한데 선비 하나 오도카니 좌정해 있다. 그는 기러기의 안착을 무연히 지켜본다. 과연 무엇을 헤아리는가.

소동파가 대신 읊는다. ‘인생 이르는 곳 어딘지 아는가/ 기러기 진창을 밟은 자리와 같다네.’ 기러기가 앉으면 발자국이 어지럽다. 살아서 우리가 헤맨 편력과 무에 다를까.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족적이다. 그것이 한번 뿐인 인생이라 동파는 안간힘 다한 생애를 마지막 구절로 위로한다. ‘기러기 날아간 뒤에야 동서를 따지겠는가’

그림은 동정호 주변의 승경을 소재로 한 소상팔경 중에 하나다. 구름 사이 떠다니는 산들이 뾰족하고 말갛게 펼쳐진 강변이 그윽하다. 기러기 날아오른 뒤라야 저 선비 일어날까. 돌아서는 선비 뒤로 발자취는 강물이 지울 것이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가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울 테지만 흐르는 강물은 그림자조차 남겨둘 마음이 없다. 나 떠나고 남을 자취가 두렵거나 부끄러운가. 풀잎에 맺힌 백로의 이슬이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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