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산골 교회 목사님께 기사의 사진

“한글 성경 완역 100주년. 아직도 쉽게 읽을 성경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얼마 전 중부 내륙 지방의 국도를 지나다가 보았습니다. 저물어가는 하늘 속으로 종탑과 십자가를 세워올리고 벽면에는 들꽃을 가득 그려 넣은 작은 교회가 기도하듯 서 있었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왜 감동을 받았는가 하면 그곳이 바로 저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엔 고향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이북에서 오셨다는 할아버지 목사님은 엄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세상을 떠나신 이후 교회는 다시 종을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곳을 지나던 길에서 포근한 교회를 만나다니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들꽃교회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향 교회는 많은 도시인들의 꿈입니다.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이라도 마음속에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가 본 교회당과 교회 종소리가 살아있습니다. 그 기억은 도회의 삶을 청량하게 하는 샘물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 교회를 지키는 목회자는 뒷산과 앞개울을 지키는 땅의 파수꾼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들꽃교회에 할머니를 모시고 오는 한 어린아이의 초롱초롱한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며 고향의 파수꾼인 목사님께 전부터 품고 있던 질문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왜 한국교회는 한글 성경을 다른 현대의 문서처럼 젊은이들이 쉽게 읽고 깨우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지 않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어렵다는 것은 옛날 말투나 고어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글 성경은 한일합병 전에 번역됐기 때문에 어떤 서적보다 한국어 고유의 단어와 문장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고린도후서 4:8)와 같은 구절은 찬탄이 나올 만큼 뛰어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영문 ‘We are hard pressed every side, but not crushed’(NIV)에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와 같이 놀라운 번역을 이끌어냈다는 것, 이렇게 뛰어난 표현이 신·구약 도처에 즐비하다는 것은 한글 성경을 읽는 큰 재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고 혼란스러워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성경을 제대로 번역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현재 사용되는 한글 성경은 보통 사람들이 별다른 성경 지식 없이 읽고 이해하기에 난해합니다.

요즘에는 한국교회가 대부분 개역개정 성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개역개정을 사용하는 교회가 예배 마지막 순서에서 성경 본문 내용을 새번역 문장으로 다시 읽어주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신학자들의 논문이나 서적에서도 개역개정의 문장이 아니라 새번역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신학생 중에서도 “차라리 영어 성경을 보는 것이 쉽다”거나 “개역개정 성경과 새번역 성경이 함께 있는 합본을 본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올해는 한글 성경이 완역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11년에 간행된 ‘셩경젼셔’는 한글 창제 이후 방대한 문장이 집대성된 최초의 한글 책이라고 합니다. 춘원 이광수는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한글은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성경이 한글을 깨웠음에도 100년이 지나도록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이 보급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오늘날 한국교회는 사회와의 소통 부재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말씀으로 돌아가라’고 권합니다. 후세대들이 돌아갈 말씀, 손쉽게 읽을 성경이 필요합니다. 이런 질문은 산골 교회의 목사님께 드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향의 영혼을 지키는 목사님이야말로 한국교회를 지키는 분이라고 할 수 있겠기에 오래 품고 있던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추석에 많은 사람들이 고향 교회를 방문해서 청량한 샘물을 마음에 품어 가시기를 기대합니다.

수석 논설위원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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