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준서] 민족명절을 교회의 감사절로 기사의 사진

우리 민족의 큰 명절 한가위가 다가왔다. 올 여름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일기가 불순해서 농작물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시장에 나와 있는 탐스런 햇과일을 보면, ‘풍성한 추수 때는 감사뿐이라’는 찬송가의 일절이 입가에 맴돈다.

추석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說)이 있지만, 추석은 농사와 관련이 있는 ‘농업절기’이다. 여름내 땀 흘려 가꾼 토지소산을 거두어 드린 후 덥지도 춥지도 않은 중추가절(仲秋佳節)에 추석 잔치를 벌려왔다. 또한 추석은 우리 민족 고유의 ‘감사절’이다. 풍성한 소출을 감사하며 햇곡식과 햇과실로 정성껏 상을 차려 조상에게 감사하는 차례(茶禮)를 지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 추석은 교회력(敎會曆)과는 관계가 없는 날이다. 최근 추석에 가까운 주일을 감사주일로 지키는 교회가 생겨나고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대신 한국교회는 독자적인 감사주일을 지킨다. 찬바람이 부는 11월 셋째 주일이 한국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이다. 추수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때, ‘추수’ 감사주일을 지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의 영향일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의 감사절은 11월 넷째 목요일이다.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3대 절기가 등장한다.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이다. 이 세 절기에는 수확한 맏물을 성전으로 가져가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예배를 드렸다. 한 가지, 이스라엘의 기후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르다. 건기(5∼10월)와 우기(11월∼4월) 두 계절뿐이다. 또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년에 3번 농작물을 수확한다. 이른 봄, 겨울 보리 추수를 시작하면서 지킨 절기가 무교절이다. 무교절은 일년 중 첫 번째 추수와 관계된 절기로 새 출발한다는 뜻으로 지난해의 묵은 누룩을 집안에서 치워 없애고, 새 누룩이 만들어지기까지 7일 동안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을 먹었다.

이로부터 7주가 지난 50일째가 되는 날, 밀과 여름 보리를 수확하고 ‘맥추절’(‘칠칠절’이라고도 부른다)을 지냈다. 그리고 가을에 포도, 무화과, 올리브 등 과실을 거두어 드리고 ‘수장절’을 지켰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원래 농작물 수확과 관련 있는 농사 절기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들 절기의 본래 성격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종교적 절기로도 지켰다.

무교절은 노예의 땅 애굽에서 해방된 출애굽 역사와 접목되었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아 쓴 나물과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딱딱한 빵을 먹으며 ‘유월절’을 지냈고, 그 후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면서 출애굽 역사를 기념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무교절을 지냈다. 맥추절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계명을 감사하며 예배드리는 절기가 되었고, 수장절에는 이스라엘 조상들이 경험한 40년 광야생활을 대대로 잊지 않기 위해서 집집마다 나뭇잎과 가지로 ‘초막’을 짓고, 7일 동안 ‘초막생활’을 해 이름도 ‘초막절’(혹은 ‘장막절’)이 되었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농업 절기를 과감하게 수용하여 신앙적 의미를 갖는 종교적 절기로 승화시켰다.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 추석은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온 감사 절기다. 하나님을 모르던 시대, 우리 선조들은 자연이나 조상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고 차례를 지냈다. 이제 한국교회는 우리의 전통적인 추석 명절을 기독교 신앙 안으로 끌어들여 ‘기독교화’할 만큼 성숙해졌다고 믿는다. 추석을 교회의 감사절로 ‘신앙화’해 풍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절기로 지키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토지소산의 맏물을 거둘 때마다 하나님께 바치면서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제는 햇곡식과 햇과일로 잔치하는 민족의 명절을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로 지킬 때가 되지 않았을까.

박준서 경인여대 총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