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누가 거품인데? 기사의 사진

안철수의 등장은 정치권의 지각을 뒤흔들었다. 그는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선출마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가당치도 않은 얘기”라고 부인했다. 링 주변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그렇게 떠났다. 그런데 그가 뒷모습을 보이기 무섭게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일갈했다. ‘안철수 바람’이 아니라 ‘거품’일 뿐이라고.

그렇게 말하려면 정치인들 스스로의 지지기반이야말로 ‘거품’임을 먼저 고백해야 한다. 거기에 더해 안 원장(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의 이미지가 정치인 자신들과 아주 다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상대를 과소평가하는 장수에게는 필패만 있을 뿐이다. 물론 홍 대표로서는 당 구성원들의 사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짐짓 허장성세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이럴 때는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게 더 낫다.

정치 지각·지형 바뀌고 있다

안 원장은 대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인기는 여전하다. 여론조사 결과마다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지목한다. 간다 하지만 아주 가겠느냐며 퇴장을 믿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안철수 태풍’에서 대안을 발견한 사람들은 더 많아 보인다.

그간 정당들은 오만했다. 특정 지역을 장악하고 맹주노릇 하던 사람들이나 집단은 정치귀족그룹, 정치과점집단을 형성했다. 유권자들은 싫든 좋든 지역 연고 정당을 지지하고 그 공천후보를 뽑아야 하는 구조였다. “우리 말고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나 후보 있으면 그쪽으로 가든가…!”

안철수라는 사람이 그 단단한 정치 지각에 심한 균열을 만들었다. 정치권을 살짝 들여다보기만 하는 것으로 괴력을 발휘했다. ‘나’ 또는 ‘우리’ 말고도 국민이 기꺼이 선택할 대안이 떠올랐다는 데 대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경악했을 것이다. 이건 거품이 아니고 현실이다. 홍 대표 표현을 흉내 내자면 기성 정치권의 ‘업보’다.

어떤 면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구시대적 정치구조 혁파를 기대하는 신세대의 대안이었다. 그는 2001년 3월 26일 해양수산부 장관에서 물러나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정치에 복귀했지만 그를 유권자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해 6월 5일부터 인터넷 정치증권 사이트 포스닥에 상장된 노 고문 주는 상한가 행진을 벌이며 16일 오후 1등에 올라섰고 이 기세가 대선 때까지 이어졌다.

미래형 정치인, 과거형 정치인

신세대는 과거의 경력에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시선, 미래를 열어갈 순수한 열정, 변화 주도의 의지에서 대안을 찾았다. 그는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그 자신이 ‘시민혁명’으로 명명했을 만큼의 대단한 변화였다. 다만 정당과 행정부에 두터운 인적 기반이 없었고, 숱한 정치적 논쟁을 유발한 탓에 과거형 정치구조 안에서 좌절하고 말았지만….

안철수 지지 열기는 그냥 바람이 아니다. 이것을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여타 정당들도 명심해야 한다. 정치지각이 울렁거리고 지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정치권 문지방에 발을 들여놓으려다 만 그에게 여전히 높은 기대감이 여론조사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취재기자에게 “병 걸리셨어요?”라고 무안을 줬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추석날 5촌 조카 가수 은지원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는 것은 민심의 동향에 좀 더 민감해졌다는 뜻으로 읽힌다. 안 원장은 미래형 인간으로 이미지 지어졌다. 그런데 박 전 대표의 경우 “한국말 못 알아들으세요?”나 “어제 보도 안 보셨어요?”라는 과거형 표현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했다. 지금 바로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전히(어쩌면 더욱) 대중정치의 시대이므로!

국민은 어떤 일에도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고 고고한 자태를 지키는 동상 같은 리더보다는 지식과 열정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으로 구현하고자 애쓰며 땀 냄새 풍기는 리더를 더 원한다고 생각한다. <사족>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만약 대선을 겨냥해서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라면, 그건 한나라당 박 전 대표와 한번 겨뤄볼 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진곤 논설고문 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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