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연장전까지 4시간을 보는 이유 기사의 사진

요즘 롯데-SK의 시합을 자주 보았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을 텐데 이상하게도 제가 보는 경기마다 연장전에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게임에서는 크게 리드하던 롯데가 동점을 허용하고 연장에서 손아섭의 홈런으로 다시 리드를 잡았으나 SK가 다시 뒤집고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4시간 이상 걸린 것 같습니다. 저녁부터 계속 텔레비전 앞에서 야구를 본 것이지요. 그렇게 한가하냐고 물으실 것 같은데 실제로 한가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한가해도 야구를 4시간 이상씩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전 시합을 보아야만 그 게임의 맛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생각해봅시다. 어떤 사람의 인생이 하이라이트로 정리될 수 있을까요? 백일 사진, 돌 사진, 유치원 졸업식, 그리고 이어지는 시간의 매듭이 되었던 사진들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의 인생을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생각해봅시다. 당사자가 아닌 남들이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졸업사진 중 하나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옷이라든가 머리 스타일이 특이하다고 말하거나 얼굴 표정이 어떻다고 말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전 과정을 겪은 당사자는 다릅니다. 그 사진 한 장은 초등학교 시절 전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에 따라 얼마나 많은 심정들이 있었을까요. 가슴 졸인 시간들,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사소하지만 심각했던 고민들, 그리고 친구들이 보여주었던 미소들. 이 모든 것은 사진 한 장으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겠지요.

야구 시합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이라이트는 단조롭습니다. 거의 매번 비슷하기까지 하지요. 득점하는 순간이나 안타를 치는 순간 그리고 결정적인 에러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지요. 게임이므로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장면만으로 그 게임을 설명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하이라이트만으로는 게임의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게임은 흐름이 있고 흐름이란 전체를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볼 카운트의 변화에 따라 투수와 타자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 하나하나가 야구의 묘미 중 하나입니다. 하이라이트보다 더 형식적인 것은 다음 날 신문 기사입니다. 결과만 간략히 보고할 뿐이지요. 저는 한 게임을 보더라도 몇 시간이고 봅니다. 많은 책을 요약본으로 읽는 것보다는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는 것이 더 나은 것과 비슷하겠지요. 요즘 편집의 시대라는 말도 있으나 인생도 게임도 편집으로는 참맛을 알 수 없습니다.

탁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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