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인규] 반구대 암각화 망가뜨리고 말 것인가 기사의 사진

올해는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를 발견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자랑스러운 이 국보는 댐 건설 때문에 침수가 반복되면서 훼손되고 있어 전문가, 정치인, 언론이 수없이 대책을 호소했지만 아직도 해법은 찾지 못하고 정부와 울산시간 줄다리기만 하고 있다.

1971년 동국대 문명대 교수팀이 발견한 반구대 암각화는 수천년 전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우리 조상이 암벽에 고래, 물개, 사슴, 호랑이 등 바다와 육지 동물 300여점의 그림을 파 놓은 것으로, 특히 고래잡이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세계 최초의 암각화라는 점에서 학술·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유적이다.

문화재청은 국보로 지정했고, 2010년에는 이 암각화와 국보 147호 천전리 각석 및 주변 문화역사 경관을 포함해 ‘대곡천 암각화군’의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수록했다.

중환자 두고 처방전 타령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울산시 공업용수 확보를 위해 1965년 이곳에서 4㎞ 아래에 사연댐이 건설됐고, 이 때문에 암각화는 연중 4∼8개월을 물에 잠겼다가 노출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 암각화는 모자를 쓴 것 같은 천혜의 지형으로 빗물이 잘 들이치지 않고, 세일이라는 암석의 특성상 표면이 매끄러워 빗물이 쉽게 흘러들지 않아 지난 수천년의 세월을 잘 견뎌 온 것이다. 그러나 암각화는 현재 오랜 ‘물고문’ 때문에 급격히 훼손되고 있으며, 특히 겨울철에는 틈새로 들어간 물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 훼손이 가속화될 수 있다.

문화재청과 관계 전문가들은 이 암각화를 보존하면서 울산시의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수많은 연구와 논의, 공청회를 거치면서 해법을 모색했다. 해결 방안으로 암각화 앞에 물막이벽을 설치할 것인가, 수로를 변경할 것인가 등을 놓고 논쟁을 거듭한 끝에 수위를 낮추고 부족한 물은 다른 곳에서 공급하는 방안이 가장 적절하다는 결론을 얻은 바 있다. 그럼에도 울산시는 현재 부족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지어진 물 부족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지 않으면 댐 수위를 낮출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의 국가적 중요성을 고려해 국무총리도 지난 3월 현장을 방문, 암각화 보존 대책과 대체수원 확보를 동시에 추진키로 울산시장과 약속한 바 있고, 이를 위해 ‘경북·대구권 맑은 물 공급’은 4대강 사업을 통해 낙동강 물을 활용하기로 하고 타당성 조사를 했으나 지난 7월 이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결과 미흡한 것으로 결론나 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선사시대 조상이 남긴 문화재를 세계적인 문화재로 보존하는 일은 역사적 사명이다.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한 여러 방안 중 수위를 낮추는 것을 선택한 까닭은 세계유산 등재의 빼어난 가치와 더불어 이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국가적 의지를 가장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물막이벽을 설치하거나 수로를 변경하는 현상 변경은 이를 훼손하여 세계유산의 가치를 상실한다.

물 부족 문제는 국가가 해결

울산시가 주장하는 물 부족 문제는 장차 울산시 인구가 늘어 물 수요가 증가할 때의 일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너무나 자명하다. 국보로 지정된 국가 유산을 내버려둔 채 논쟁만 거듭할 것이 아니라 훼손의 주범인 댐 수위를 시급히 낮추고 다시는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는 일이 선결과제이며, 이후 물 부족을 해결하는 게 순서다.

중병에 결려 다 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두고 ‘처방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떤 처방을 해야 할지 논쟁만 일삼는 어리석음을 지금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범하고 있다. 댐 수위를 불과 8m만 낮추면 될 일인데도 말이다. 그로 인해 부족하게 되는 하루 3만t의 물은 울산시가 필요로 하는 시점까지 국가는 얼마든지 해결할 능력이 있지 않은가.



이인규 문화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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