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데스크시각

[데스크시각-신종수] 취직의 기술, 채용의 기술

[데스크시각-신종수] 취직의 기술, 채용의 기술 기사의 사진

이번 추석 때 30대 중반이 되도록 취직을 못하고 장가도 못간 조카 녀석을 만났다.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 지금 40, 50대들이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공부는 안 하고 만날 데모만 한다는 소리를 듣곤 했어도 취직이 잘됐다. 취직 시즌이 되면 입사가 사실상 보장된 원서 여러 장을 들고 골라서 지원서를 내곤 했다. 학생운동만 하고 토익시험 한 번 치른 적이 없는 어느 선배는 노동운동과 대학원, 고시 등 이런저런 진로를 고민하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취직이나 해야겠다”며 대기업에 들어가더니 현재 임원으로 근무 중이다.

그러나 지금은 토익을 900점 넘게 받아도 취직하기가 어렵다. 토익뿐만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스펙을 쌓아도 취직이 잘 안 된다. 청년들이 실력에도 불구하고 시절을 잘못 만나 고생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청년들은 심지어 스펙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제품의 사양을 뜻하는 ‘specification’의 약어인 스펙이 취업 준비생들을 괴롭히면서 올해는 이를 풍자하는 소설(‘철수 사용설명서’)까지 나왔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이 소설에는 29살의 취업준비생 철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철수는 세탁 기능을 배우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헹굼이나 탈수 기능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세탁기 같았다. 철수는 ‘세탁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항균 기능에 삶음 기능까지 갖춘 세탁기들이 바글바글했다.”

과연 채용과정이나 채용 후에 스펙이 중요할까?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81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0년 대졸 신입사원 채용동향’을 조사해 15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기업들은 직원을 뽑을 때 면접에 가장 큰 비중을 뒀다. 면접에서 학점이나 영어성적 등 눈에 보이는 스펙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성, 업무 지식, 조직적응력 등을 두루 갖춘 인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도 “학점이나 영어점수가 좋고 머리 좋은 사람보다는 열정과 태도, 희생정신과 조직적응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집단면접을 볼 때 상대방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은 감점이라는 것이다.

이는 리더십보다는 팔로십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팔로십보다 리더십을 더 좋아하고 팔로어가 되기보다 리더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탄탄한 팔로어 경험을 쌓은 사람이 리더가 된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모세는 가장 리더십이 뛰어난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랐을 뿐이다. 수많은 백성들을 통솔한 것은 조직관리의 기술이 아니라 철저한 팔로십이었다.

기업 임원들은 취업 준비생들이 스펙을 경쟁적으로 쌓는 과정에서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갖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사람은 설령 취업을 한다 해도 동료들과 소통하고 협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업들이 취업준비생들에게 스펙에서 벗어나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필요가 있다. 대학생들이 스펙에 매몰된 것은 기업들이 잠재력 있는 인재를 찾기보다 편의주의적인 채용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이다. 대기업들이 요즘 강조하는 공생은 중소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을 스펙에서 해방시켜주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신종수 산업부장 jsshi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