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조성기] 마음속의 해골들 기사의 사진

예수 당시 예루살렘 사형장은 해골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해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크라니온’인데 지금도 영어로 ‘cranium’ 하면 해골, 두개골이라는 뜻이 된다. 크라니온을 라틴어로 번역하면 ‘갈보리’가 되고,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골고다’가 된다. 갈보리이든 골고다이든 다 해골이라는 뜻이다.

왜 그곳이 해골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까. 지형이 해골 모양으로 생겨서 그런 별칭이 붙었다는 설도 있지만, 해골이 널려 있는 사형장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가졌다고 하는 편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편견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기 전에는 사형수를 처형할 때 주로 돌멩이를 던져 죽이는 석형을 집행했다. 예수 당시도 로마 총독이 다스리는 유대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석형으로 사형집행을 했다. 석형을 집행하는 곳은 대개 성 밖에 위치해 있고 한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었다. 그 안에 사형수를 세워두고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돌멩이를 던졌다.

옛날부터 석형이 집행되던 사형장이 로마 당국에 의해 십자가 사형장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많다. 이제 십자가는 움푹 파인 구덩이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돌멩이를 들고 서 있던 구릉 위에 세워진 셈이다.

해골이라 하는 곳, 곧 골고다는 이 같이 인간의 죄에 대한 처벌이 유대 율법과 로마 법률에 의해서 오랜 세월을 두고 반복해서 이루어졌던 곳이다. 다시 말해 율법의 저주와 법률의 심판이 쏟아졌던 곳이다. 율법 또는 법률이 무엇인가. 선악에 관한 사회적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선악의 원리에 철저하게 기초하고 있는 것이 율법과 법률이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은 선악의 원리를 따라 살며 악이라고 판단되는 것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처벌을 해왔다. 인류 역사를 통해 세계 곳곳에 해골이라 하는 곳이 가득 널려 있게 되었다.

독립문 지하철역 근방에 서대문형무소 유적이 있다. 음침한 감옥과 으스스한 사형장의 유적도 거기에 있다. 필자는 그 사형장 입구에서 교수형으로 죽어간 사형수들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조봉암 선생과 같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흉악범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법률의 이름으로 죽어간 점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사형장으로 사용된 곳만이 해골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 마음속에는 해골이라 하는 곳이 없을까. 선악의 원리를 따라 무수한 사람들을 판단하고 죽여서 묻어 놓은 우리 마음자리도 해골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선악의 기준이라고 여기는 어떤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소원을 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사형집행하고 있는 셈이다.

사형집행하는 것과 같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23장 27절에서 바리새인들을 꾸짖은 적이 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여기서 바리새인의 내면 가운데 죽은 사람의 뼈가 가득하다는 말씀은 무수한 사람들을 마음으로 판단해 죽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마음이 한량없이 넓은 것처럼 보이나 그 안에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판단해 죽인 사람들의 뼈가 가득하다는 말이다. 바로 마음속에 해골 더미들이 쌓여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조성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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