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88) 손 안에 달빛 붙잡아도 기사의 사진

나뭇가지에 둥실 달이 걸렸다. 강물에도 달이 얼비친다. 가을이다. 보름달이다. 나뭇잎만한 조각배는 기우뚱, 노인이 뱃전에 기대 물에 뜬 달을 건진다. 살랑대는 물이랑에 행여 달빛이 깨질라 소맷자락 젖는 줄 모르고 두 손 살그머니 다가간다. 배안에 불쑥 솟아오른 술병이 두 통. 저 노인, 물으나마나 이태백이다.

하늘에 달이 뜨고 물에 달이 비치고 병에 술이 차면 태백은 못 참는다. 들어가면 술이요, 뱉으면 노래요, 읊으면 시다. 다달이 보름달이라도 차면 이지러지니 오늘의 보름달은 단 한 번. 태백은 기어코 절창을 뽑아낸다. ‘오늘 사람은 옛 달을 보지 못해도/ 오늘 달은 일찍이 옛 사람을 비추었지/ 옛 사람 오늘 사람 물을 따라 흐르니/ 더불어 밝은 달 보기가 이와 같았네.’

뒤이어 그는 빌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노니 달빛이여, 술잔 밑바닥까지 비춰주오.’ 넘치는 흥감이 없고서야 어찌 이태백이라 하겠는가. 화가는 물에 풍덩 빠질 이태백을 너무 단정하게 그렸다. 농탕한 낭만은 그림을 해친다고 봤을까. 대신 화면에 온통 가을빛을 빚어 넣었다. 벗은 나무는 추수(秋樹)요, 맑은 물은 추수(秋水)요, 달 건지는 가을걷이는 추수(秋收)다.

옛 화가는 보름달을 그릴 때 붓끝으로 동그라미 치지 않는다. 홍운탁월(烘雲托月)이란 기법을 쓴다. 구름을 그려 달을 은근히 드러내는 방식이다. 노자도 ‘백(白)을 알고 흑(黑)을 지킨다’고 가르쳤다. 참 멋들어지고 깊이 있는 발상이다. 저 노인 손에 달이 잡힐까. 고려 문인 이규보가 웃는다. ‘물에 뜬 달을 병에 담아도 병 기울이면 달은 사라지는 것.’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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