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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목회 현장-서울 평화나루교회] 탈북자 품고 통일 후 북한교회 모델 준비

[희망목회 현장-서울 평화나루교회] 탈북자 품고 통일 후 북한교회 모델 준비 기사의 사진

‘통일은 남북한 사람들이 같이 사는 것이다.’ 북한 돕기나 통일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치된 견해다. 대북 지원이나 남북한 체제 통합은 통일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남한 교인뿐 아니라 북한 교인(탈북자)이 한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섬기고, 교제할 때 진정한 통일 연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 2만여명 중 상당수가 교회에 연결돼 있지만 이들은 봉사나 선교의 대상이거나 따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 신촌동 카페 라파스를 찾았다. 주택가에 위치한 이곳은 토요일 오후인데도 5∼6명의 청년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라파스는 스페인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유기농에 공정무역커피를 쓴다. 수익금의 3분의 1은 유니세프와 열매나눔재단에, 3분의 1은 탈북자들을 위해 기부한다. 카페는 이 건물 지하에 있는 평화나루교회(구윤회 목사)가 운영하고 있다. ‘평화를 실어 나른다’는 뜻의 평화나루교회는 통일 후 북한 교회의 모델을 준비하고 있는 곳이다.

“남한 교회들이 탈북자들을 교육하거나 생활을 지원하는 사역은 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교회 구성원이나 예배공동체 멤버가 아닌 구제나 선교의 대상으로 굳어져가고 있습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북한 교인들이 훨씬 많아질 텐데 지금의 모델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평화나루교회는 지난해 7월 구윤회(35) 목사가 개척했다. 예배나 양육 등 교회 시스템에서 남한 교인과 탈북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걸 원칙으로 했다. 지금 이 교회의 부교역자 2명은 각각 남한과 북한 출신이다. 소그룹 리더도 남한 청년과 함께 탈북 청년이 맡고 있다. 전 교인은 15명으로 그중 5명이 탈북자다. 남북한 인구 비율로 봤을 때 교회 내 인적 구성도 2대 1(남한 대 북한)이 되어야 바람직한 통일 모델이 된다는 게 구 목사의 설명이다. 서울신학대 북한선교연구소(소장 박영환 교수)에서 연구하면서 내렸던 결론이다.

평화나루교회는 남북한 출신 구분을 없앴다. 실제 이날 카페에 모인 청년들 중에 누가 남한 출신이고 북한 출신인지 겉으로 봐서는 잘 알기 어려웠다. 지난해부터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남한 교인 전일구(27)씨는 “예배 후 소그룹 모임을 갖는데 누가 탈북자이고 누가 남한 사람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었다”며 “서로 편견 없이 동등하게 대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회는 식사나 모임 때면 비용의 70%는 교회가 보조를 해주고 나머지는 교인들이 충당한다. 여기엔 탈북자들도 예외가 없다. 교회 내 남북한 구분이 없어진 것은 이러한 평등한 관계 때문이라는 게 구 목사의 설명이다. 평등할 때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탈북자들이 남한 대신 제3국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한 사회가 탈북자에 대해 불평등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대해줄 때 처음엔 탈북자도 남한 사람도 불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탈북자를 능동적이게 합니다. 그게 통일의 준비이고요.”

탈북자로서 올해 연세대를 졸업하고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유우성(31)씨는 “우리 교회의 특징은 탈북자가 와도 남한 친구들과 똑같이 대해준다는 것”이라며 “서로 편하게 가족처럼 대해줘서 그런지 지난해부터 예배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척 1주년을 넘긴 평화나루교회의 숙제도 있다. 탈북자들에 맞는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교안을 만드는 것이다. 탈북자는 대체로 북한에서 받은 세뇌교육에 대한 반감으로 교회 내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에도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복음을 소개하는 일은 아직 어느 누구도 모델을 제시한 적이 없다. 북한 선교나 통일에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 이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는 게 구 목사의 바람이다.

구 목사의 친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참전해 순직, 무명전사로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외가는 황해도에서 월남했다. 집안으로 보자면 북한은 원수나 다름없다. 어릴 적부터 가정은 반공교육의 터전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중학교 때 목회자가 되기로 서원했을 때부터 하나님은 그에게 북한을 향한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주셨다. 신학대학원 재학 시절 평양, 금강산을 돌아보면서는 아예 ‘북한에서 사역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갖게 됐다. 정말 곧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2007년 이후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그 바람은 잠시 접어둬야 했다. 대신 남한 내 탈북자들을 품게 됐다. 남한에서 통일을 충분히 연습하라고 보내신 하나님의 사인으로 탈북자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교회는 교단(기독교대한성결교회) 지방회의 도움을 받는 미자립 상태지만 구 목사는 “마치 본격적인 모내기를 위해 모판을 만드는 심정”이라며 오히려 설레어했다.

이번 달 중엔 탈북자가 인도하는 중국어 강좌를 교회 내에 개설한다. 11월엔 2명의 탈북자가 세례를 받는다. 구 목사는 내친 김에 탈북자 커피 바리스타, 탈북자 밴드도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글·사진=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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