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최동원을 기리며 기사의 사진

최동원 투수를 생각하면 몇 장면이 떠오릅니다. 우선 가까이서 본 적이 생각나는군요. 연세대에 놀러갔다 전성기였던 최 선수의 투구 장면을 포수 뒤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빠른 속도와 함께 엄청난 낙차로 예리하게 떨어지던 커브가 아직도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그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백호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실업과 대학 팀 모두 참가하는 대회였는데 대학에서는 연세대가, 실업에서는 한국화장품이 최강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팀은 1회전에서 맞붙었습니다. 당연히 동대문구장을 팬들이 가득 메웠습니다. 저도 끼어서 봤는데 0대 1로 연세대가 패했습니다. 한국화장품 팀은 최 선수의 볼을 거의 치지 못했고 연세대 역시 상대 투수를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4번 타자였던 김유동 선수의 홈런 1발로 경기의 승패가 갈렸습니다.

저는 경기장을 나오면서 눈 감고 휘둘렀는데 얻어 걸린 것이 아닌가 하고 위로를 했습니다. 홈런 한 발에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최 선수는 기가 죽는다든지, 언짢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여전히 당당했고 별일이 아니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최 선수는 언제나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홈런을 맞으면 같은 코스로 쳐보라는 듯 다시 던지기도 했고 한국시리즈에서는 4승을 혼자 거둘 정도로 정면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당당함 외에 좌절과 분노, 그리고 아쉬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실업팀 롯데에 입단할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당시 롯데와 입단 계약금으로 5000만원에 합의했는데 막상 돈을 받으러 간 날 구단에서는 2100만원만 현금으로 주고 2900만원은 6개월 약속어음을 끊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나머지 돈은 받지 못했다고 생전에 최 선수가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던졌지요. 프로로 전향해서는 1년에 27승을 올린 적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도 롯데는 최 선수를 내쳤습니다. 선수협의회 문제라고 하는데 팬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은 내부 사정이지요. 롯데와 최동원을 떼놓을 수 있는 겁니까. 그리고 다시는 롯데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은퇴 후 지도자로 롯데로 갈 수도 있었을 텐데 한 번도 기회가 없었지요. 사정이 어떻든, 이유가 어떻든 롯데가 배출한 불세출의 스타를 이렇게 대접할 수는 없는 거지요. 아무리 마뜩잖아도 팬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영구 결번, 명예감독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최 선수가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최동원은 단순히 롯데라는 한 팀에서 영구 결번될 정도의 선수가 아니라 팬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대체될 수 없는 투수이기 때문입니다. 최동원을 직접 볼 수 있었고,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탁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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