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촌의 ‘마마 제인’… 남지연 남아공 선교사의 인생 2막

빈민촌의 ‘마마 제인’… 남지연 남아공 선교사의 인생 2막 기사의 사진

날이 희붐해질 무렵, 한 여인이 짐 꾸러미를 끌고 나타난다. 초라한 행색의 흑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나타나 “마마 제인!” “헬로, 마마 제인!” 하고 외친다. 고요하던 마을이 갑자기 활기를 띤다. 여인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그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빵조각을 나눠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 외곽 빈민촌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여인은 현지에서 ‘제인 남(Jane Nam)’으로 불리는 남지연 선교사다. 그녀는 새벽 3시면 어김없이 기상해 빵을 굽는다. 빈민촌의 ‘홈리스’들에게 아침 식사를 주기 위해서다.

마음만 먹으면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남 선교사. 하지만 기아대책의 남아공 선교사로 파송돼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에 파묻혀 산다. 그것도 만67세의 적지 않은 나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남아공에서 일시 귀국한 남 선교사를 최근 국민일보 빌딩에서 만났다.

화려한 이력 쌓고서

“이 나이에 아프리카 선교사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아니 강권적으로 이렇게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오랫동안 훈련시키셔서 이렇게 쓰시네요. 참 대단하고 절묘하신 하나님입니다.”

1944년생인 남 선교사는 어릴 때부터 공부든 운동이든 1등이었다. 63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가 대학원까지 공부했다. 무역업을 하는 남편을 만나 큰 부를 누렸다. 77년 캐나다로 이민 가 현지에서 모피 도매상을 했다.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티칭프로 자격까지 얻었다. 전 세계 명문 골프장을 돌며 골프를 치면서 여생을 보낼 요량이었다. 그러던 차에 95년 세계적 자동차 회사인 GM의 한국지사장이 됐다.

대충 요약한 남 선교사의 인생 여정이다.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이력이다. 한데 그녀는 이 모든 과정을 선교사로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 과정으로 여겼다. 자신의 이력과 경험이 선교 사역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중간 중간 상담법을 비롯한 각종 훈련을 받게 하고,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돼서야 선교사로 쓰심을 볼 때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집중 공부한 후진국정치론이 지금 남아공 상황을 이해하고 현지 지도자들과 교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오랜 캐나다 생활로 능통해진 영어실력과 비즈니스 경험 등이 사역의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무엇보다 많은 나이가 오히려 강점이 되고 있습니다. 나를 지칭하는 ‘마마’에는 큰 존경과 애정이 들어있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

돌이켜보면 그녀의 변신이 전혀 엉뚱한 건 아니다. 그녀에겐 몇 차례 ‘하나님의 암시’ 같은 게 있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또한 우연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해외 선교지로 다닐 기회를 얻은 게 예사롭지 않다. 그런 중에 가끔 주체하기 어려운 감동을 얻기도 했다.

그 하나가 몇 년 전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현철 전 삼미그룹 회장을 만났을 때다. 당시의 충격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몸도 불편한 상태에서 재벌 회장을 지낸 사람이 선교에 투신한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이전 GM 한국지사장 시절 서울 온누리교회에 출석할 때는 고 하용조 목사로부터 예언 같은 말을 듣기도 했다.

“하 목사님이 뜬금없이 ‘노후에 선교사로 일하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땐 참 황당하게 들렸습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고 교회 봉사도 좀 했지만 그분의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생겼다. 2004년이었다. 위암 진단을 받았다. 몸속에 암덩어리가 자라고 있는데도 건강하다며 큰소리 뻥뻥 쳐온 스스로가 불쌍하고 가소로웠다.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기도했다.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불현듯 ‘하나님의 일을 더 해야 하는데…’하는 압박감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인간의 생사여탈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분이 살려주실 것 같았다.

“암에 걸리고도 이렇게 담담한 환자는 처음 봤다는 주치의의 말을 들을 정도로 편안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의사에게 비키니 입을 때 잘 보이지 않게 수술자국 예쁘게 꿰매 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위의 75%를 잘라냈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겹치며 그녀는 갈등에 휩싸였다. 선교사를 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감지되긴 하는데 60대 후반의 나이를 생각하면 맥이 빠졌다. 기도하기 시작했다. 교회에서건 집에서건 시간만 나면 “하나님, 명쾌하게 정해주세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냈을까. 그러던 중 언제부턴가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프리카의 할머니 선교사로

마침내 기회가 왔다. 남 선교사는 2009년 기아대책으로부터 파송됐다. 당초 우간다로 갈 예정이었으나 경유지 삼아 잠시 들른 남아공에 주저앉게 됐다. 프리토리아에서 이퀘지레템바 학교를 운영하면서 축구선교를 하고 있는 임흥세 선교사를 만나 자신의 일을 찾게 된 것이다.

이퀘지레템바 학교는 프리토리아 외곽 흑인 거주지역인 소샹구베에 있다. 알코올과 마약, 에이즈로 병든 남아공 빈민촌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축구로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탁월한 운영으로 남아공 정부로부터 무료로 시설을 임대받았다.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한국 축구계와 하나은행 등 기업들도 지원하고 있다. ‘희망의 별-이퀘지레템바’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남 선교사는 남아공 정부 및 프리토리아 시 당국과 접촉하는 창구 역할을 하면서 임 선교사와 동역을 하게 됐다. 그리곤 지경을 넓혀 고아원, 교도소, 에이즈센터 등을 돌며 하루 수백에서 수천 명의 사람을 접촉한다. 현지의 한국 선교사들끼리의 협력 체제를 만드는 데도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팀 사역을 하자”는 그녀의 주장은 점차 호응을 얻고 있다.

선교지에 뼈를 묻겠다

“남아공에는 상처 입은 영혼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면서 오직 예수에게 사랑과 희망이 있음을 전하다 보면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변화되고 예수님께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과 힘을 얻습니다. 세상에 이런 멋진 삶은 없을 겁니다.”

남 선교사는 나이로 볼 때 분명 할머니다. 하지만 힘과 패기가 넘쳤다. 실제로 아직 흰 머리카락 하나 없고 돋보기 없이 신문도 읽었다. “정말 젊고 곱다”는 말에 “내가 좀 그렇긴 하죠” 하며 농담도 건넸다.

그녀는 하나님께 불려가는 날까지 선교사로 살고 싶다고 했다. 여행가방 두 개 분량의 소지품만 빼고 자신의 소유 모두를 하나님께 내놨다. 프로 자격까지 따고 한 번도 골프를 하지 못했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다. ‘마마 제인’ 하고 외치며 반갑게 달려드는 아이들을 안아주는 재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남 선교사의 자녀 2남1녀는 하나같이 명문대를 나와 안정적인 사회인으로 정착했다. 그녀는 최근 자녀들에게 유언을 남겼다고 했다. 자신이 선교지에서 세상을 뜨면 유해를 현지에 묻어 달라는 내용이다. 선교지에 뼈를 묻겠다는 뜻이다.

글 정수익 선임기자·사진 이병주 기자 sagu@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