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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배병우] 한국경제, 악순환에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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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 문제를 생각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 게 지난 6월이다. 지금은 잠을 설치는 정책당국자가 더 늘어났을 것이다. 아니, 더 늘어야 정상이다. 경제 상황이 그만큼 심상찮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제부처들이 씨름해온 굵직굵직한 문제를 꼽아보자. 물가, 가계부채, 전세대란 등이다. 이들 문제 관련 대책 발표만 수십 차례이고, 지금도 매주 물가관계장관회의, ○○점검회의 등 다양한 이름 하에 대책이 논의된다. 하지만 정책당국자들의 얼굴에는 패색이 짙다.

물가 상승추세는 꺾이지 않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가계 부채는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로 양적 규제가 먹혀들지 않는다. 더욱이 최근엔 늘어나는 빚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전세가 급등과 월세 전환 붐은 청·중년층의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실로 심각한 수준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전세정보방에 오르는 댓글은 단순한 불평·불만을 넘어 ‘격문’을 연상시킨다.

이런 내부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외부로부터 충격이 오고 있다. 미국·유럽 재정위기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예측하긴 어렵다. 다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1회성의 폭발적인 이벤트였다면 이번 위기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가운데 상당히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걱정은 수출이다. 우리 경제를 이 정도라도 버티게 한 주 성장엔진인 수출이 세계경기 둔화로 휘청거릴 경우 경제 전체가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 것이다. 불길한 조짐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20일까지의 통계이긴 하지만 전달에 이어 9월에도 무역수지가 42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온전한 건 자동차뿐이라는 얘기가 증권가와 산업계에서 돌고 있다. 최근 환율급등(원화 약세)에 기댄 수출증가 전망도 선진국과 신흥국 등 해외수요 자체가 가라앉거나 둔화된다면 헛된 기대일 뿐이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장은 “그냥 조심해야 할 시점이 아니라 아주 조심해야 할 때”라며 “상황이 ‘꾸준히’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내수가 수출 공백을 메워주길 기대하기도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외부 충격에 의한 경기둔화가 물가, 가계부채, 전세난 등의 내부 문제를 악화시키고, 다시 이들 ‘내우(內憂)’가 경기하강을 더욱 가속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스탠다드차터드(SC), 모건스탠리, ING 등 해외 투자은행들은 가계부채로 인한 가계소비 부진이 한국의 성장동력을 더욱 잠식할 것이라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내우외환이 겹쳤지만 이를 막아낼 정책수단이 고갈됐다는 점이다. 재정은 2008년 금융위기 극복과 4대강 사업 등으로 이미 건전성이 크게 나빠졌다. 오히려 앞으로 경기둔화 영향으로 늘어날 가계 파산과 기업 부도 등에 대비해 국고를 좀 더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이런 점에서 뼈아픈 것이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이끄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정상화 실기이다. 마지막 남은 수단이 통화정책인데, 지난 8일 ‘9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김 총재가 토로한 대로 기준금리는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게 돼 사실상 정책수단으로서의 유효성이 상실됐다. 경제가 V자형으로 회복하기 시작한 이후 한은이 금리를 적극적으로 올리기 시작했다면 내우외환이 겹친 지금쯤에는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중차대한 시점에 중앙은행을 ‘개점휴업’ 상태에 빠뜨린 한은 지도부의 오판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배병우 경제부장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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