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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유희경(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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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쪽 부엌 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이 난다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하 생략)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의 시간은 짧다. 아침 식탁을 차리느라 어머니는 등을 돌린 채 주방에 붙어 있다. 고지서-어머니-나-플라타너스 잎. 아침 식탁 앞에서 단어들이 분절된다.

신경은 날카롭다. 마침내 뱉어내는 서너 토막이란 말. 삶은 조각난 채 너덜거린다. 그렇더라도 그런 한계 상황에 부력을 주고자 최대한 가벼운 이미지를 빌어 형상화하고 있다.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구절과도 맞닿아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티셔츠에 목을 넣어야 한다.

정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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