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차라리 정당 간판을 내려라 기사의 사진

다시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안철수 신드롬은 분명 기존 정당들과 그들이 하는 정치에 대한 옐로카드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무소속 인사들이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앞자리를 차지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서울시장은 대통령 다음으로 크고 중요한 선출직이다. 서울시장직이 행정을 하는 자리이고 정치적인 자리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현실을 애써 외면해서 하는 소리다. 당장 서울시 행정을 견제 감독하는 의회가 대부분 정당 소속 의원들로 구성돼 있고 정당들도 서울시장 선거에 대통령 선거 못지않은 정치적 의미를 두고 있다. 실제로 일을 하는 데도 큰 정치력을 필요로 하는 자리다.

단기필마로 서울시장직을?

이처럼 서울시장은, 정당의 배경 없이는 선거 과정에서부터 지지 세력을 조직화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등 여러 가지로 불리하고, 당선되더라도 그 직의 수행이 수월치 못할 게 빤한 자리다. 그럼에도 여당과 야당이 유력 후보군으로 보고 영입하려는 인사들은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여당이 영입하려는 이석연 전 법제처장과 민주당이 영입하려는 박원순 변호사가 그들이다. 거대하지만 불신 받는 조직의 말을 타느니 정치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단기필마(單騎匹馬)로 뛰면서 세(勢)를 규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후보가 뽑히고 나면 그 후보들과 범여권, 또는 범야권 단일후보를 결정하기 위한 경선 등에는 응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박 변호사는 단일후보가 되더라도 민주당 간판은 달지 않을 것이며 당선된 뒤에나 입당을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다.

정당 밖 인사들이 요구하는 이러한 방식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먼저 후보 단일화 과정이 말처럼 쉽지 않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범여권, 또는 범야권 단일후보를 추대 방식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결국 경선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경선 방식이라는 게 각자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에 그 규칙을 정하는 데서부터 난관에 부딪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나라당은 그래도 여론조사에서 당내의 나경원 의원이 이 전 법제처장을 앞서고 있어 범여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두 사람의 경선을 수용하는 데 부담이 덜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론조사에서 박 변호사의 지지율이 25일 선출된 박영선 의원보다 월등히 높아 박 의원과 박 변호사의 경선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박 변호사가 범야권 후보가 될 경우 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도 못 내는 불임정당으로서 정권 대체세력이 될 수 없다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사정들을 종합할 때, 이 전 법제처장과 박 변호사는 서울시장에 출마하고 싶다면 각기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입당하거나 독자적인 정당을 만드는 게 순리라는 생각이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고 시장직을 수행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당선된 뒤에는 정치 현실을 감안하여 입당할 생각이라면 출마에서부터 그 간판을 내걸고 심판을 받는 게 옳다.

정당정치를 포기할 수도 없고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집권당과 수권 제1야당이라는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정당에 대한 불신이 깊으면 그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쇄신책을 찾아야지, 서울시장 후보도 못 내고 무소속 후보의 들러리나 서는 못난 모습을 보여줘서는 희망이 없다. 차라리 간판을 내리는 게 낫다. 따라서 이 전 처장이나 박 변호사가 여권 야권 각각의 단일 후보가 된다면 당의 간판을 내걸고 출마한다는 약속이나마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약속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독자적으로 당의 후보를 내는 게 집권당으로서, 제1야당으로서 최소한의 존재 의미를 보여주는 길이다.

참으로 딱하다. 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정당 정치가 60년 넘는 연륜을 쌓았다. 그럼에도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이 중요한 선거 때만 되면 자체 내에 마땅한 후보가 없어 당 밖을 기웃거리고, 당 밖에서 한순간 돌출한 인사들에 의해 정당들이 휘둘리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포기할 수 없는 게 정당 정치인데도 우리 정당들은 제 구실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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