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89) 풍성하고 아련한 꿈 기사의 사진

한 발 치켜든 수탉이 ‘꼬끼오’ 목청을 뽑는다. 쭉 뻗은 볏은 늠름하고, 털은 빗질한 듯 고우며, 꼬리는 맵시가 넘친다. 어미 암탉은 병아리를 모아놓고 입에 문 벌레를 나눠 먹인다. 수탉 뒤로 보이는 꽃과 나무. 꽃은 탐스러운 모란이고 나무는 옥니가 꽉 들어찬 석류다. 형형색색으로 꾸민 민화의 정경이 참 따습다.

민화에는 꿈이 넘친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숨 쉬고 유치찬란한 장식이 익살궂다. 촌티가 풍기는 채색에서 도리어 소박한 진정이 엿보인다. 지금 보는 ‘화조도’도 정겨운 시골 인심이 흐벅지게 드러나고 곰살맞은 소망이 소재마다 푸지다. 화가는 과연 무엇을 꿈꾸며 이런 그림을 남겼을까.

모란을 그리면 부귀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란은 꽃 중의 왕이라 오래도록 부귀의 상징으로 불렸다. 수탉은 한자로 ‘공계(公鷄)’인데 공(公)은 공(功)과 발음이 같고, 수탉이 울 때면 울 명(鳴) 자에서 이름 명(名) 자가 연상된다. 모란과 수탉은 그래서 ‘부귀공명’과 통한다. 석류는 오뉴월에 꽃이 피고 구시월에 열매가 익는다. 탁 터진 껍질 사이로 분홍빛 씨알들이 송골송골 맺히면 입 안에 신맛이 절로 고인다.

옛날 중국의 낙양에서 모란은 ‘국색(國色)’을 자랑했고 석류는 ‘품귀(品貴)’로 떠들썩했다. 석류가 오죽 귀했으면 ‘열매 하나에 소 한 마리 값’이란 말이 돌았을까. 하여도 값이 비싸다고 그리지는 않는다. 석류의 회화적 상징은 다산이다. 촘촘하게 씨가 박힌 꼴이 자손이 무성하기를 비는 마음과 맞았다. 아들 딸 고루 낳아 다복한 집안에 공명까지 얻는다면 더 바랄 게 있으랴. 민화의 꿈은 풍성해서 즐겁고 아련해서 그립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