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정권이 언론의 등쌀에 굴복할 것인가 기사의 사진

거대 언론사들의 등쌀에 정부·여당이 무릎을 꿇을 듯하다. 정권 담당자들이 그른 것은 단호히 마다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믿음을 지켜주지 못하고 거대언론사의 이해관계에 놀아난 결산서를 남길 것 같다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종편)과 미디어렙에 대한 얘기다.

언론학자들 사이에 나도는 수수께끼가 있다고 한다. 문제는 ‘조중동에 없는 것은?’이다. 답은 ‘미디어렙’이란다. 종편 채널사로 선정된 언론사에서 다루지 않기 때문에 나도는 말이다. 언론이 다루지 않으니까 당장은 일반인들이 종편이 뭔지, 미디어렙이 뭔지 모르고 지나간다. 그러나 민심을 끝내 돌려세우지는 못할 것이다.

종편은 뉴스 보도를 비롯해 드라마·교양·오락·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편성하여 방송할 수 있는 채널을 말한다. 모든 장르를 편성한다는 점에서는 KBS나 MBC와 같은 지상파와 차이점이 없으나 케이블TV나 위성TV를 통해서만 송출하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85% 이상이 케이블TV나 위성TV를 시청하고 있기 때문에 지상파에 맞먹는 영향력을 갖는 채널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시간이 하루 19시간으로 제한받는 데 비해 종편은 24시간 종일 방송을 할 수 있고, 중간광고도 허용되는 혜택도 있다.

지난해 종편 논의가 한창일 때 대부분의 언론학자는 물론 방송통신위원회 핵심관계자들도 우리나라의 광고시장으로 볼 때 종편 선정은 하나면 족하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거대 신문사에서 사활을 건 유치경쟁을 벌이자 탈락한 언론사의 해코지가 무서웠는지 도중에 일정 점수를 획득한 언론사는 모두 선정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결국 지난 연말 방통위는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등 4개 신문사를 종편채널사업자로 선정했다.

여기까지가 정권의 1차 말 뒤집기이다. 그 이후 미디어렙 문제를 놓고 2차 말 뒤집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디어렙이란 방송사의 위탁을 받아 광고영업을 하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다. 방송사가 직접 광고영업에 나서면 자본과 방송이 결탁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대행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광고 판매대행을 해왔지만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09년 말까지 이를 해소토록 했다. 헌재의 결정 요지는 지상파 방송광고 독점 판매대행에 경쟁요소를 도입하라는 것이었지만, 방송사가 직접 영업을 하는 데는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며 미디어렙 제도를 높이 평가했다.

그럼에도 미디어렙 법은 아직 정비되지 않고 있다. 방통위는 언제부턴가 미디어렙 법에 종편채널은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방송사가 출범하기 전에 규제에 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종편 논의 초창기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말 뒤집기이다.

종편이 직접 광고영업에 나선다면 엄청난 특혜를 주는 것은 물론 방송의 공공성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시장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는 신문사들이 종이신문의 영향력을 앞세워 방송광고까지 직접 거래한다면 광고단가가 지상파보다 최소한 50% 이상 높게 책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중소신문사 지역신문 종교방송 지역방송은 고사하게 될 것이다.

오는 12월 개국을 목표로 하는 종편사들은 다음 달부터 광고주초청 매체설명회를 시작으로 직접 영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고, 정부 여당은 미디어렙 법안처리를 미루며 종편사의 직접 광고영업이 시작되도록 슬며시 길을 열어주려 하고 있다. 한 번 길이 나면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4개 종편 선정은 정권이 거대 신문의 등쌀에 굴복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미디어렙 법의 고의적 미정비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음을 알면서도 다음 단추들을 어긋나게 끼워 맞춘 대표적 술책으로 기록될 것 같다. 국가의 정책이 이래도 되는지, 뒤탈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묻고 싶다.

임순만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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