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데스크시각

[데스크시각-김준동] 손기정 선생의 후예들

[데스크시각-김준동] 손기정 선생의 후예들 기사의 사진

지난 22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고 손기정 옹의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 헌액식이 열렸다. 지난 2002년 11월 손 선생이 돌아가신 지 9년 만에 진정한 스포츠 영웅으로 추앙받은 것이다. 손 선생이 누구인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일제 강점기의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전한 인물이다. 일제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지만 2시간29분19초라는 세계기록으로 당당히 1위로 골인해 한민족의 한을 풀어준 민족의 영웅이기도 하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손 선생의 위대한 유산은 후배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손 선생의 제자인 서윤복 선생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세계기록으로 우승했고,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도 손 선생이 길러낸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1, 2, 3위를 휩쓸며 약소국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90년대는 한국 마라톤의 황금기다. 황영조 선수는 1991년 마의 10분벽을 깨고 2시간8분47초로 한국기록을 세웠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몬주익의 언덕’을 넘어 세계를 제패했다. 올림픽 무대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으로 우승해 손 선생의 한을 56년 만에 풀어준 쾌거였다. 한국 마라톤의 질주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황 선수의 바통을 이어받은 인물은 이봉주 선수였다.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데 이어 2000년 도쿄 마라톤에서는 2시간7분20초의 한국기록으로 2위에 올랐다.

이후 한국 마라톤은 남녀를 불문하고 기록 단축은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그 사이 세계 마라톤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전을 벌이며 멀찍이 달아났다.

1967년 세계 마라톤은 2시간10분벽을 깨고 9분대에 안착한 이후 2분여를 단축시키기까지 무려 21년의 세월이 걸렸다. 2시간6분대에서만 11년 동안 머물렀다. 그러나 마라톤이 스포츠 과학과 접목되면서 기록 단축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2시간5분대와 4분대 진입에 걸린 시간은 각각 1년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다시 1년 만에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가 2008년 2시간3분대(2시간3분59초)에 첫 발을 들여놓았고 지난 25일에는 패트릭 마카우(케냐)가 3년 만에 21초를 단축시키며 2시간3분38초로 세계기록을 다시 작성했다. 2시간2분대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한국은 어떤가. 이봉주 선수가 세운 한국기록(2시간7분20초)은 11년째 잠자고 있다. 이는 1985년 세계기록(2시간7분12초)에 해당되는 것이다. 2009년 이봉주 선수마저 은퇴한 이후 한국 마라톤은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여자 기록은 1997년 권은주 선수가 세운 2시간26분12초가 14년 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한국 선수들은 지난 4일 안방에서 열린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의 격차를 현저히 드러내며 들러리 신세로 전락했다.

이제 런던 올림픽이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한민족의 얼이 담긴 한국 마라톤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임시적 대책보다는 스포츠 과학으로 무장한 육상진흥센터 설립 등 과감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만 황영조 선수의 금메달 쾌거 이후 20년 만인 내년 런던에서 태극기가 높이 게양되는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준동 체육부장 jd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