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장현승] 미움에 가려진 사랑 기사의 사진

프랑스 파리 미라보 다리 위에서 구걸로 하루 10유로 남짓 버는 맹인이 있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노신사가 그를 가엽게 여겨 몇 글자의 ‘메시지’를 적어 남겨준다. 그 후 맹인의 수입은 다섯 배로 껑충 뛰었다. 걸인의 동냥그릇 옆에 세운 푯말의 메시지 내용 때문이다. ‘봄은 오건만, 여러분들이 보시는 이 아름다운 봄날을, 저는 볼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지나가던 행인들의 마음이 흔들린다. 이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이 봄날을 못 보는 사람도 있구나. 아! 이런 사실을 잊고 살았는데….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일깨워지며 왠지 앞 못 보는 걸인에게라도 무언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과 행동이 걸인의 소득을 증대시킨 원인이라 하겠다. 감성을 자극한 메시지가 걸인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지나가던 행인에겐 새로움을 일깨워 감사하는 마음에 눈을 뜨게 한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감성

정 화백은 가끔 돌출행동을 하는, 유파가 다른 후배 이 선생을 매우 싫어한다. 그 미움이 얼마나 심한지 정 화백은 사석에서 이 선생을 언급할 때면 입에 달고 지칭하는 말이 ‘그 새끼’였다. 어느 때 미술 공모전이 열려 이 선생도 작품을 출품했는데, 마침 그 대회에 심사위원장으로 정 화백이 선임된다. 심사가 진행되어 두 작품이 최종 심의에 오르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 선생의 작품이다. 규정에 따라 심사위원장인 정 화백이 대상을 선정하게 된다. 정 화백과 이 선생의 껄끄러운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심사위원들의 예상은 뻔했다. ‘이 선생 탈락.’ 아니나 다를까? 정 화백은 이 선생의 작품 앞에서 한참동안이나 벌레 씹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나란히 놓인 또 다른 작품을 바라보다가 다시 이 선생의 작품을 반복하여 감상하기를 수차례. 마침내 결심이 선 정 화백은 몸을 홱 돌리며 내뱉었다. ‘개새끼.’ 그 뒷말이 걸작이다. ‘그래도 그림 하나는 잘 그린단 말이야.’ 대상을 이 선생이 차지한 것은 물론이다.

이것 걷으니 그것이 보였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금도(襟度)’다. 즉 단점과 장점을 나누어 받아들이는 도량이다. 이성적 판단에 의하면 이 선생의 돌출행동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독선적이며 배려함이 없고 분위기와 동떨어진 행동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이성은 제공한다. 그렇게 쌓이고 고착된 ‘미움을’ 잠시 밀어내면 그 뒤편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성적 판단에 의해 가려져 있던 것을 밀어낸 뒤 드러나게 된 진정한 그것을 심사위원장 정 화백은 감동을 느끼며 보는 것이다. 작품은 본래 감상하는 것이며, 감성의 기능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믿음도 미움에 휘둘리지 않는 정 화백 같은 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움을 밀어내고 사랑할 것을 찾아내는 정 화백의 눈길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그 눈길에서 예수를 본다. 긍정의 눈길만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실천해야 하는 사랑의 계명이 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원수에게서 찾지 말고 예수로부터 찾으라. 그분만이 복수심을 밀어내고 원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아신다. 예수 안에서 이성은 설득의 중요한 논리를 제공하나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감성이라는 진실을 깨닫는다. 감성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화면 속 세상만 볼 것이 아니라 하늘을 자주 보자.

장현승 과천소망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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