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90) 단풍은 예쁘기만 한가 기사의 사진

산속에 가을 정취 들차다. 나무들 어지러이 머리 풀고, 비탈 바위 납작 바위 키를 재는 풍경이 스산하다 못해 수선스럽다. 얼키설키한 구도와 나고 드는 소재가 시선을 안착시키지 못하는 그림이다. 찾아보면 눈 둘 곳이 있긴 하다. 가운데 너른 바위에 노인 하나 걸터앉았고, 나무 아래 수레 모는 아이가 숨어 있다.

가득해서 황잡한 이 그림, 그린 이는 문기가 남다른 선비화가 이인상이다. 그는 풍경을 곱게 다듬지 않는다. 꾸며서 아양 떠는 화면은 환쟁이나 하는 짓, 내버려둬서 제멋대로인 산수가 그의 눈에 도리어 자연스럽다. 산과 물, 꽃과 나무가 언제 입 맞추어 솟고 흐르고 피고 자라던가. 버석하게 여윈 가을 기운이 메마른 붓질에서 차갑다.

화가는 당나라 두목의 시구를 적었다. ‘수레 멈추고 단풍 숲 늦도록 쳐다보니/ 서리 맞은 잎이 이월 봄꽃보다 붉구나’. 때는 찬 이슬이 서리로 변하고 온 산에 홍엽이 물드는 단풍철이다. 저 노인은 해지는 줄 모르고 붉은 잎사귀에 넋을 뺏긴다. 나무마다 고까옷 갈아입으니 청단풍과 홍단풍만 단풍이냐, 고로쇠와 복자기도 앞 다퉈 단풍 든다.

산마다 붉은 색칠에 바쁘자 청나라 장초는 시절 헷갈린 시를 쓴다. ‘조물주가 술이 취해 붓을 휘두르니/ 봄 가을의 꽃나무를 바꾸어 그리네’. 단풍이 반가운 시인의 귀여운 투정이다. 하여도 가을은 숙살(肅殺)의 계절이다. 젊은 여자는 봄을 타고 늙은 남자는 가을을 앓는다. 갈바람에 울적한 백거이는 ‘취한 내 모습 서리 맞은 단풍/ 발그레하지만 청춘은 아니라네’하며 한숨지었다. 올 가을 단풍에 어느 가슴이 멍들까.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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