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먹고도 안 찍는 민주양심” 기사의 사진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이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범야권 단일후보가 된 박원순 변호사를 계속 공격하고 있다. 예컨대 “참여연대가 기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면 아름다운재단이 해당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는다”는 식의 의혹 제기다. 3일에는 참여연대 측의 반박과 사과요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재단의 회계가 불투명하다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진위를 가려낼 책임은 신문 독자들이 아닌 주장 당사자들의 몫이다. 공격하고 반박한 사람들이 밝혀내줘야 할 일이다. 스스로 고백하든 검찰의 힘을 빌리든, 이 역시 당사자들의 선택지이다.

강용석의 멈추지 않는 공격

그건 그렇다 하고 이 논란에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1985년 제12대 총선 유세장 풍경이다. 부산 중·동·영도 선거구에서 4명의 후보가 나섰다. 민정당 윤석순, 민한당 김정길, 신민당 박찬종, 국민당 노차태 후보였다. 신생 신민당의 돌풍이 예고되고 있었다. 유세현장의 분위기는 야당, 그중에서도 박 후보에게 쏠렸다. 민정당에 대해 민심이 돌아서긴 했지만 1선거구 2명 선출의 중선거구제였던 만큼 여당 윤 후보의 당선은 거의 확실해 보였다.

난감해진 쪽은 민한당의 김 후보였다. 박 후보와 윤 후보의 당선은 곧 자신의 패배였다. 박 후보에게 몰리는 표를 나눠 갖기만 해도 당선은 가능할 것이었다. 그런데 유권자들이 무슨 수로 표를 나눠줄 것인가. 그래서 유세 때 ‘박찬종 선배’에 대한 원망을 토로하기도 했다. “박 선배는 어디서든 당선될 텐데 왜 하필…”이라는 투정성 원망을, 취재하면서 들었던 듯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김 후보가 기사회생의 아이디어를 냈다. “아빠는 박찬종 선배를 찍고, 엄마는 이 김정길을 찍어주십시오”라는 호소였다. 절묘한 정리였다. 유권자들은 고민할 필요 없이 가족끼리 역할 분담을 해서 두 후보에게 투표했다. 낙선의 위기에 있던 김 후보가 1등을 차지하는 이변이 그렇게 연출됐다.

정작 이야기하려는 것은 이게 아니다. 바로 그 선거에서 신민당 박 후보가 내건 캐치프레이즈 가운데 하나가 ‘먹고도 안 찍는 민주 양심’이었다. “여당 후보가 금품을 주면 받으십시오. 주는데 왜 안 받겠습니까. 다만 찍을 때 바로 찍으면 됩니다.” 기억에는 그렇게 들은 것으로 남아 있다. 유권자들의 도덕적 부채감을 해소시켜준 명 구호였다. 돈을 받았으니 찍어줘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렸을 텐데, 주는 것은 받고 안 찍어 주면 그게 양심을 지키는 행동이라고 말해준 것이다. 아마 이 캐치프레이즈가 야당 후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된다.

과오는 과오, 죄는 죄일뿐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의 관계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입장이니 무슨 말이든 거들 수 있을 리 없다. 독자로서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세상에, 그런 식으로 기부를 받다니!” 했다가 “아, 그랬구먼. 의심할 일이 아니네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고작이다. 진위를 모르니 이런 말에도 “아하!” 저런 주장에도 “아하!” 하게 된다는 뜻이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의 자세를 치열하게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느낌까지 털어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때 박 후보의 ‘먹고도 안 찍는 민주양심’을 지금 박 후보의 모금활동에 이어붙일 생각은 없다. 우연히 그게 연상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먹고도 안 찍는 게 민주양심일 수 있을까? 돈 받은 유권자가 있었다면 그 사람의 고민을 해소해 줄 기발한 구호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도덕적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말이다. 부정한 돈은 받으면 안 된다. 받는 순간 도덕성은 허물어지고 만다. 그건 민주양심이 아니라 민주훼손행위다. 이를 가르친 셈이 된 박 후보의 말도 도덕적·법적으로 합당하지 못했다. 변호사인 그가 몰라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여당 후보에게서 돈 봉투를 받은 유권자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다고 여겨 알면서도 오도했을 터이다.

성경을 읽기 위해서라고 해도 촛불을 훔치는 것은 절도행위다. 잘못은 어떤 명분이나 핑계로도 호도될 수가 없다. 과오는 과오이고 죄는 죄일 뿐이다.

이진곤 논설고문 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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