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이영미] ‘도가니’라는 반성문 기사의 사진

레지스탕스 출신의 노(老) 투사는 불의한 세상에 “분노하라”고 외쳤다(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영화 ‘도가니’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하라.”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너무 미안해” “억울하고 분통해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내가 싫다” “내가 어른인 것조차 수치스럽다” “가진 자의 횡포를 외면하는 약한 우리들의 모습을 봅니다” “나도 그저 멀찍이 서서 바라만 보는 시민 중의 한 사람은 아닌지” “‘그것이 알고 싶다’ 세 편을 연달아 본 느낌. 모르고 살았다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영화 ‘도가니’ 공식 웹사이트와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밀려드는 관객 후기는 반성문을 닮았다. 어떤 관객은 영화 ‘도가니’를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베스트 3에 드는 영화”로 꼽았다. “밤잠을 설쳤다”거나 “물 한 모금 넘어가지 않는다” “몸살을 앓았다”는 이도 있었다. 반성의 이유는 이런 것들이다. 끔찍한 아동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 알았더라도 무심히 지나쳤다는 것, 혹 분노했더라도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 사회적 무지, 무관심, 무능에 대한 집단적 후회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 ‘도가니’가 12일 동안 관객 280만3728명을 동원했다. 이번 주 안으로 3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올해 최고 흥행작 ‘최종병기 활’과 ‘써니’는 7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으니 300만명이란 숫자는 뉴스가 아니다. 다만 화창한 주말 오후 ‘도가니’를 선택한 관객들의 ‘불편한’ 마음, 그리고 이들이 내놓은 수천개의 반성문은 사건이다.

이들을 움직인 게 놀라움이나 분노만은 아니었다. 280만명의 불특정 다수를 결집시킨 ‘도가니’ 현상 바탕에는 죄책감이라고 불릴 법한 사회적 각성이 보인다. 죄책감이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이다. 죄를 저질렀을 때 생겨나는, 따라서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애초 성립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래서 ‘도가니’ 현상은 놀랍다. ‘도가니’ 가해자는 법정에서, 영화와 소설 속에서 이미 확정돼 있다. 응징해야 할 명백한 악인 셈이다. 관객은 가해자에게 돌을 던지고 분노하면 된다. 하지만 ‘도가니’의 관객들은 돌을 던지는 희열 대신 집단 죄책감을 나누고 있다. 제가 저지르지 않은 악에 대해 자발적으로 사회적 책임감을 나눠 지고 있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은 사회 시스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런 구조를 허락한 건 공동체 구성원들이다. 약자가 린치를 당했을 때,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는 책임을 나눠 가질 수밖에 없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장애아동 성폭력 사건 역시 그걸 가능하게 한 우리 사회 시스템 속에서 탄생했다. ‘도가니’ 현상은 정확히 그런 사회적 자각을 담고 있다. 사회적 악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공동체의 부채의식 말이다.

요즘 극장 밖 상황은 극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도가니 방지법’을 만들어 ‘시설’이라 불리는 사회복지법인의 비리 척결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지난 정부에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몸 던져 막았던 이들이다. 경찰은 지능범죄수사대 수사관, 성폭력 전문 수사관 15명으로 전담팀을 꾸렸다. 6년을 끌어온 사건이 영화가 개봉된 지 불과 7일 만에 재수사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모두 관객의 반성문이 끌어낸 해결책들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관객이 떠나면 대책은 또 어떻게 돌변할 것인지. 기왕 쓴 반성문이다. 앞으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좀 더 지켜보는 것까지 그 격렬한 반성문 속에 포함하면 좋겠다. 감시하는 저널리즘의 의무도 이번에는 잊지 않겠다고 결심해본다.

이영미 문화생활부차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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