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조병현 서울행정법원장] “난민 판결은 벼랑끝 몰린 사람에게 새 삶 주는 것” 기사의 사진

서울 서초동 서울행정법원은 난민에게 가장 중요한 곳이다. 법원에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이집트 케냐 등 세계 곳곳에서 온 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반정부 활동가, 이슬람국가의 개종자, 파룬궁 수련자 등 갖가지 사연으로 조국을 떠나야 했던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법무부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낸다. 올 들어 9월까지 계류 중인 사건만 100건을 훌쩍 넘는다.

급증하는 난민 소송에 대처하기 위해 조병현 서울행정법원장은 지난 2월 취임하자마자 11개 행정재판부 중 4개를 난민전담재판부로 지정했다. 지난달 세계난민판사협회 총회에 우리나라 법원을 대표해 처음 참여해 ‘한국 사법부의 난민 보호’를 주제로 대표연설을 했다.

지난달 30일 ‘난민 법원장’인 조 법원장을 행정법원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전향적으로 난민 인정 판결이 나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말로 난민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 세계난민협회 총회에 처음으로 판사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 대한 세계 난민판사들의 관심이 높다. 한국에서 난민 판결이 하나 나면 유엔난민기구(UNHCR) 등을 통해 세계로 빠르게 퍼진다. 최근 몇 년 새 난민 인정 판결이 늘면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 국가로 인식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인에 대해 난민 판결을 하는 판사가 있을 것 같은데, 참석자 중에 없었나.

“없었다. 대신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다른 나라에서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호주 판사가 발제했는데 ‘한국에서 병역을 거부할 경우 징역형을 살아야 하지 않느냐’며 병역거부자에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최근 호주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낸 병역거부자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난민 판결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한국인이 또 다른 이유로 해외에서 난민 신청하는 경우가 있나.

“국내에 머물던 탈북자가 해외로 나가 난민으로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총회에서 대표 연설을 마치자 한 영국 난민심사관이 자신이 맡은 탈북자 난민과 관련해 질문을 해왔다. 탈북했지만 남한에서도 살 수 없다며 영국으로 가서 난민 신청을 한 것이다.”

-탈북자 사건을 맡은 난민심사관에게 뭐라고 말했나.

“탈북자는 우리나라 헌법상 우리나라 국민인 것은 맞지만 국제적 관점에서 보면 남한과 북한은 유엔에 별도로 가입한 별개의 국가다. 탈북자 또한 남한에서 거주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에서 외국에 난민신청을 한 것이니까 그 사람을 남한에 보낸다면 난민협약 정신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답해줬다.”

-난민은 해당국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난민판결을 할 때 외교적 관계도 고려하나.

“부산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의 한 외교관이 ‘한국은 파룬궁 수련자를 난민으로 받아서는 안 된다’며 파룬궁 수련자의 난민 문제를 꺼낸 적이 있다. 부산지방법원장으로 있을 때 우연히 함께한 자리에서였다. 중국 정부는 파룬궁이라는 단체가 정치세력화 하는 것을 막으려는데 한국 정부가 이들을 받아주면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난민 판결에 해외 정부가 적잖은 관심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인 3명을 난민으로 인정한 판결도 비슷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난민은 상당히 외교적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이란 정부에서는 불만일 수 있겠으나 재판부가 난민협약과 개종의 진정성을 면밀히 따져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08년에 개정된 이란 형법에는 기독교로 개종할 경우 사형한다는 조항이 있다. 최근 이란에서 개종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는 기사를 봤다. 다시 이슬람교로 돌아오면 살려준다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들었다.”

-난민 심사기관인 법무부보다 법원에서 난민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왜 그런가.

“난민 심사가 법무부에서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해 수백 건의 난민 신청을 심사하는 국적난민과 직원이 10명도 되지 않는다. 서울출입국사무소에서 1차로 난민 신청자를 인터뷰하지만 서류심사에 치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법정에서 법무부의 난민 심사과정에서 충분한 의견 진술을 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법무부는 사실 난민을 찾아내기보다는 난민 아닌 사람을 가려내려는 입장이다. 그래서 신청자에게 유리한 질문보다는 불리한 질문을 한다. 때문에 진짜 난민을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갖게 된다. 이런 법무부를 보완하는 기능을 행정법원이 하려고 한다.”

-법무부는 난민전담재판부가 다른 행정소송도 맡고 있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난민 소송 사건을 11개 합의부에서 나눠 맡기보다 4개 합의부에서 맡는 것이 재판부의 전문성 확보와 난민 판정의 기준 확립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지난 2월 신설 이후 난민 소송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 중이다. 난민 소송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 그리고 법리적 해석을 하는 매뉴얼을 짜고 있다. 그 결과가 이달 중 책으로 출간된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앞으로 계속 보완할 것이다.”

-난민 소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소송구조와 통역이 문제다. 신청자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렵다. 또 난민신청자가 소수민족 출신이어서 특수한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 적절한 통역인을 구하고 문화적 오해 없이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영어통역인을 추가로 선임해 이중통역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들에게 인지·송달료 외에도 변호사비용까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아직 미흡하다. 난민전문재판부 출범에 맞춰 통역인에 대한 유의사항을 매뉴얼을 재정비하고 통역인 명단을 확충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난민 법원장’으로서 난민에 대한 소견은.

“세계난민판사협회 총회에 모인 227명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난민 출신 판사다. 정치적 이유로 영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고 훗날 고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돌아가 판사가 된 것이다. 발표할 때 보니 한쪽 팔도 없더라. 난민 판결이란 삶의 막바지에 몰린 사람에게 새 삶을 주는 것이다.”

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

조병현 법원장은

조병현(56) 서울행정법원장은 2000년부터 3년간 서울행정법원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했다. 한국 법원에 난민 사건이 막 제기될 즈음이다. 이후 서울고등법원 행정부장판사, 부산지방법원장을 거쳐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장에 임명됐다.

조 법원장은 지난달 8일 슬로베니아 블레드에서 열린 세계난민판사회의(IARLJ) 총회에서 대표 연설을 하면서 “한국은 1945년 광복 때까지 많은 독립운동가가 중국과 미국으로 가 망명정부를 세웠고, 80년대까지도 정권의 박해를 피해 외국으로 간 민주 인사가 적지 않았다”고 난민에 대한 한국법원의 기본입장을 설명했다.

조 법원장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 관심이 많다. 2001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시절 필수공익사업장인 가톨릭대의료원과 보건의료노조 사이의 쟁의사건을 맡아 “중앙노동위원장이 직권으로 중재회부를 결정해 쟁의를 막는 것이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제약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경북 포항 출신이며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사법연수원 11기로 84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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