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창호지를 갈며 기사의 사진

창덕궁 후원의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연경당(演慶堂)이다.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 임금 권한대행을 하던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와 어머니 순원왕후를 위해 지은 집이다. 왕이라는 골치 아픈 자리에서 물러나 일개 사대부로 살고 싶은 열망이 배어있는 곳이다. 단청을 칠하지 않은 이유다.

왕이 살던 민가여서 건축적 가치가 높다. 대문인 장락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로 나눠져 있으나 내부에서는 하나로 연결되는 독특한 구조다. 선향재와 농수정이라는 서재를 부속 건물로 데리고 있다. 그러나 ‘동궐도’와 순원왕후의 생일잔치를 담은 ‘진작의궤(進爵儀軌)’에는 ‘ㄷ’자형 건물이다. 수수께끼다.

연경당에서 도배작업이 한창이다. 도배는 궁궐·민가 구분 없는 세시풍속이다. 햇살 좋을 날, 낡은 종이를 걷어내고 새 창호지를 바른다. 예전에는 과거에서 떨어진 답안지를 초배지로 사용했다고 한다. 연경당에서 겨울을 대비하는 가을의 마음을 읽는다.

손수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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