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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김용백] 正義의 공간

[데스크시각-김용백] 正義의 공간 기사의 사진

영화 ‘도가니’로 전국이 들끓고 있다. 영화 줄거리는 가난하고 퇴락한 도시 ‘무진(霧津)’시에 있는 청각장애인학교 ‘무진 자애학원’에서 벌어진 조직적 성폭행 사건이다. 사건을 둘러싸고 드러나는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실체를 ‘유죄’ 주장 시각으로 파헤쳤다. 관객들로 하여금 사회정의를 곱씹게 한다.

작가 공지영씨가 실제로 2005년 벌어진 광주광역시 인화학교 사건을 같은 이름으로 소설화하면서 반향은 시작했다. 영화는 여기에 장애아동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제도적 문제들을 분출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뒤늦게 정치권과 ‘기관’들이 부산하다. 광주시는 해당 학교의 법인에 대해 설립 허가 취소를 결정하고, 광주시교육청은 해당 학교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경찰청은 추가 범죄 여부에 대한 합동수사를 벌였다. 정치권은 미흡한 법률 개선을 공약하고, 침묵하는 검찰과 법원에 대해 국정감사장에서 뭇매를 가했다.

일본 사법제도의 모순을 질타한 일본 영화도 있다.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이다. 영화 ‘쉘 위 댄스’ 등을 연출했던 일본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역작이다. 평범한 한 프리터(Freeter·일정한 직업 없이 생활하는 사람)가 면접시험 장소에 가기 위해 콩나물시루 같은 도심 지하철을 탔다가 여고생 성추행범으로 몰려 벌어지는 법정 공방을 다뤘다. 영화는 ‘무죄’를 주장하는 억울한 한 남자가 2년간 재판에 휘말리는 과정을 통해 불완전한 일본 사법제도의 현실을 체험하게 했다.

한·일 두 영화는 법정이라는 한정된 ‘정의의 공간’을 조명한다. 법정이 과연 정의를 실현하고 지키는 곳인지 관객들의 분노와 반성, 회의를 자극한다. 건강한 민주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사법적 공간은 불완전하다는 것, 사법부의 완고한 법감정과 관행 집착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운다.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는 사회제도는 민주적이지 않다. 권력, 금력, 기득권이 판치는 법정이 있는 한 약자들의 희생과 국민적 공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2007년 초 판결에 불만을 품은 전직 대학 교수에 의해 담당 부장판사가 석궁 테러를 당했었다. 그러니 우리 법원의 판결에 억울함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공지영씨는 “정비된 법은 있으나 법 운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고발했다”고 밝혔다. 또한 “사람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이상할 수 있을까?”라는 충격을 전한 바 있다. 제도적 악(惡)에 대한 언급이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정치권이나 기관들의 반성과 개선 조치들을 일시적인 ‘바람(風)’일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근본 대책을 빨리 세우라고 목소리를 키운다. 이런 조바심엔 이유가 있다. ‘참여정부’를 표방했던 진보적인 노무현 정권 때 벌어진 사건이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지금도 문제가 되는 사회복지사업법의 개정을 반대해 무산시켰다. 한나라당이 창출한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에서 미흡했던 부분들을 개선한다고 나섰으니 덜 미더울 수밖에.

일반인들로서는 인화학교 사건 실제 내용과 이를 판결한 법감정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국정감사장에서 대법원장은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한 양형을, 국민감정과 법감정의 괴리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진’은 김승옥의 1960년대 단편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에 나오는 가상의 소도시다. 공지영씨는 민주화운동 중심지 광주를 애써 비켜 가려는 듯 가상적인 도시 이미지를 차용했다. 제도적 악들이 척결되지 않는 한 ‘무진’이라는 장소는 항상 우리 곁에 있거나 윤색된 공간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김용백 사회2부장 yb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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