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문자로 투영된 훈민정음 1000년 지식 흔든 혁명이었다 기사의 사진

한글의 탄생/노마 히데키/돌베개

현대 언어학이 태동하기 전. 음소니 음절이니 형태소 같은 단어가 어느 선구적 근대인의 머릿속에서조차 싹트기 전. 1446년 음력 9월, 한글은 ‘훈민정음’이라는 책의 형태로 세상에 공개됐다. ‘한글의 탄생’ 저자 노마 히데키(58) 일본 국제교양대학교 객원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인류 역사상 문자가 돌이나 뼈, 갑골 같은 게 아니라 “목판에 새겨지고 종이에 인쇄되고 제본된 책의 형태로” 등장하는 최초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한글은 만든 사람과 반포일, 제자 원리, 창제 이유까지 알려진 유일한 문자다. 그게 고스란히 데뷔작이자 프로필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한글 책 ‘훈민정음’이다. 다시 노마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 “(한글은) 문자 자신이 문자 자신을 말하는 책으로 세계사 속에 등장했다.”

한글은 과학적인 언어라고 너무 오랫동안 듣고 말하고 믿어왔기 때문에 왜 위대한 문자인지 묻는 건 새삼스럽다. 적어도 한국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그렇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외부인의 균형감각이다.

‘한글의 탄생’이 염두에 둔 청자는 일본어 사용자. 따라서 노마 교수는 일본문자, 한자, 라틴문자를 수시로 교차 비교한다. 그런 방식은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낫다거나 못하다는 평가 대신 제3자의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다. 뜻밖에 신선하고 놀랍게 설득력 있는 그의 안내를 따라 인류가 걸어온 지적 여정을 되짚다 보면 어느덧 한글이라는 기적을 만나게 된다.

①한글, 음(音)의 원자를 발견하다

한글이 개척한 신천지 중 으뜸은 ‘음소’이다. 한글은 처음으로 음소의 존재를 자각한 문자다. 음소란 쪼갤 수 없는 음의 최소 단위, 물리학으로 치면 원소에 해당한다. ‘밤’이라고 할 때 ‘ㅂ’ ‘ㅏ’ ‘ㅁ’으로 분리되는 세 개의 소리. 상식처럼 들리지만, 일본문자와 비교하면 한글의 혁신성이 이해된다. 히라가나 かな(kana)에서는 ‘k’와 ‘a’ 발음을 구분할 수 없다. 음소 두 개에 하나의 문자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라틴문자인 영어 알파벳. 음소는 한눈에 보인다. 라틴문자 역시 음소 하나에 하나의 문자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Mary’(발음은 meri)는 ‘m’ ‘e’ ‘r’ ‘i’의 4개의 음소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음절이 ‘me’ ‘ri’의 두 개라는 건 ‘Ma-ry’라고 분리해 쓰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반면 한글은 음소와 음절 모두 그대로 드러난다. ‘엄마’가 5개의 음소(ㅇ, ㅓ, ㅁ, ㅁ, ㅏ)와 2개의 음절(엄+마)로 이뤄져 있다는 걸 별도의 설명 없이 알 수 있다.

여기서 한글은 한발 더 나간다. 흔히 ‘밤(夜)이’를 소리 나는 대로 ‘바미’라고 쓰지 않고 ‘밤이’라고 쓰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받아쓰기 시험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 물론 아니다. 단어가 뜻을 가지는 최소단위, 즉 형태소를 나타내기 위해서다. ‘바메’ ‘바미’ ‘바므로’ 대신 ‘밤에’ ‘밤이’ ‘밤으로’라고 씀으로써 ‘밤’이라는 뜻을 가진 형태소는 한눈에 파악된다. 한글은 음소, 음절, 형태소가 문자의 형태에 정직하게 투영돼 있다. 한글이 과학적인 문자라고 하는 이유. 몇 개만 들었는데 이 정도다.

②한글, 동아시아 지식인의 믿음을 깨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내놓았을 때 극렬하게 반대했던 지식인들이 있다. 대표주자가 반대상소를 냈던 최만리. 후대인은 최만리를 ‘문명국 중국의 한자만이 문자라고 주장하는’ 사대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근거 없는 비판은 아니지만, 노마 교수는 색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그는 한글파와 반(反)한글파의 대립은 동아시아라는 더 넓은 지적 체스판 위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만리가 옹호한 건 ‘중화의 문자’ 한자였다기보다는, 한자가 표상해온 지적 전통이었다. 그들에게 천(天), 지(地), 인(人)은 그냥 문자가 아니었다. 뜻과 문자, 소리가 하나로 일치된 유기적 통일체, 곧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세종의 한글은 그들의 지적 체계를 지탱해온 한 가지 ‘뜻이 곧 문자’라는 믿음을 깨뜨렸다. ‘훈민정음’은 1000년 넘게 지속돼온 지식의 뿌리를 흔드는 혁명 선언문이었다.

③600년 전에 준비한 디지털 시대

‘훈민정음’ 해례본 속 한글은 동아시아 서예 전통에 대한 극적 반역이기도 했다. 한·중·일에서 붓으로 글자를 쓴다는 행위는 수련이고, 깨달음이며, 지(知)의 체현이었다. 완벽한 고딕체를 지향했던 초기 한글은 그런 글쓰기의 정신성에 대한 반발이었다. 컴퓨터 글꼴 같은 ‘훈민정음’의 글자체는 ‘산수화의 세계에 출현한 컴퓨터 그래픽’과 같은 충격을 던졌다.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반전도 있다. 영어는 ‘apple’이라고 나열하는데 한글은 ‘ㄱ ㅏ ㄹ’ 대신 굳이 ‘갈’을 고집한다. 타자기가 도입되면서 고민이 커졌다. 3000자 가까운 활자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때 풀어쓰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지만, 컴퓨터가 고민을 한방에 해결했다. 소프트웨어가 자모를 음절 단위로 묶어 주기만 하면 됐다.

저자는 지난해 이 책으로 마이니치신문사 등이 주최하는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을 받았다. “문화적, 지적 차원에서 한국과 한국어의 위상을 바꿔놓은 대사건”(번역자 후기)이었단다. 책은 1년 만에 3만부나 팔리며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김진아 김기연 박수진 옮김.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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