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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1938~ )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뒤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2, 3, 4는 생략)


황동규 시인이 나이 스물이던 1958년에 미당 서정주 시인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한 시다. 50년이 더 지났음에도 이렇게 결이 흘러넘치고, 때로는 돌올하게 멈춰서는 시는 여전히 드물다.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누구의 가을 시편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진술은 없는 줄로 안다. 10월의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무엇인가. 가을의 소멸이 아니겠는가. 소멸 속에서 부윰하게 떠오르는 분명한 생명력.

임순만 수석논설위원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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